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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26) 넬리 클리프덴 : 에드워드 7세의 정부

엘아라 2019. 5.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에드워드 7세 정부에 대해서 대충 일단 간단한 사람들부터 보는데 그래도 이 사람을 먼저 해야할것 같아서 미리 썼던 글들 다 뒤로 미루고 이 사람을 앞으로 땡깁니다. -0-;;;



정부들과 그 후손들...(226) 넬리 클리프덴 : 에드워드 7세의 정부



넬리 클리프덴

Nellie Clifden



넬리 클리프덴은 영국의 배우로 에드워드 7세의 삶에서 아주 잠깐 등장하는 사람입니다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1861년 여름 20살이 되기 직전의 당시 웨일스 공이었던 에드워드 7세는 영국 보병으로 10주간의 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소로입소하게 됩니다. 



후사르 복장의 웨일스 공 앨버트 에드워드(후에 에드워드 7세)

1860년대



이때 그와 함께 있던 장교들은 웨일스 공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장교들은 웨일스 공에게 여자를 데려와서 함께 지내게 해주죠. 그 여자가 바로 배우였던 넬리 클리프덴이었습니다. 이들은  넬리를 몇번 더 데려와서 웨일스 공과 지내게 해줬습니다.


문제는 웨일스 공의 부모였던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이 문제에 대해서 경악했다는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숙부들이나 백부들의 상황에 대해서 매우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여왕의 숙부나 백부들은 왕위계승자였지만 오래도록 결혼하지 않거나 아내를 외면하고 정부들과 지냈었죠. 여왕의 아버지인 켄트 공작도 오래도록 미혼으로 정부와 살기도 했었습니다. 아들이 가문의 안 좋은 전통을 이어 받을까봐 여왕은 엄청나게 걱정하게 되죠. 또 당시는 "빅토리아 시대"라고 불리던 시대였고 이것은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이 가장 이상적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부부의 장남인 웨일스 공이 여왕 부부가 만든 도덕적 틀을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이었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1861년

앨버트공은 이해 연말에 사망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아마도 여왕은 진노했을 것이며, 여왕과 아이들을 중재하던 앨버트 공은 당장 장남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그리고 가을의 비오는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비를 맞으면서 아들과 오래도록 심도있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앨버트 공은 아들을 설득했고 웨일스공역시 부모의 걱정을 이해하고 더이상의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앨버트 공은 아내에게 이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알려주었다고 합니다만, 문제는 이곳에 갔다온뒤 앨버트 공은 아프기 시작했고 진짜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아마도 앨버트 공은 당시 아내를 대신해서 정치적 문제까지 관여하고 있었기에 과로하고 있었으며 또 이전의 몇번의 사고 역시 그의 건강을 더 나쁘게 만들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이 아들을 만나고 와서 앓기 시작해서 사망한것이었기에 남편의 죽음이 아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겼으며 이후 평생 아들에게 테클걸면서 살았습니다. --;;;



남편이 죽은뒤 상복을 입고 막내딸인 베아트리스를 안고 있는 빅토리아 여왕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