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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28) 팻시 피츠패트릭 :에드워드 7세의 정부

엘아라 2019. 5.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228) 팻시 피츠패트릭 :에드워드 7세의 정부 




메리 "팻시 " 피츠패트릭

팻시 콘월리스-웨스트

Mary Adelaide Virginia Thomasina Eupatoria "Patsy" Fitzpatrick

Mary Adelaide Virginia Thomasina Eupatoria "Patsy" Cornwallis-West

(1856 - 21 July 1920) 


보통 팻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메리 아델라이드 버지니아 토마시나 유파토리아  피츠패트릭은 1856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프레드릭 피츠패트릭 목사는 상오소리 남작이었던 바르나비 피츠패트릭의 후손이었으며, 그녀의 어머니였던 레이디 올리비아는 헤드포드 후작이었던 토마스 타일러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당대 사교계에서 미녀로 알려진 팻시는 16살때 웨일스 공의 정부가 되었다고 합니다만 그 사실이 곧 밝혀지게 되게 됩니다. 그리고 스캔들을 막기 위해서 팻시는 1872년 자신의 나이보다 두배나많은 정치가였던 윌리엄 콘윌리스-웨스트와 결혼하게 됩니다. 팻시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첫째는 딸인 데이지 였고 둘째는 아들인 조지였으며 막내는 딸인 콘스탄스였죠. 


윌리엄 콘윌리스-웨스트


팻시는 여전히 아름다웠으며 사교계의 중요한 리더로 웨일스 공과 나쁘지 않은 사이를 유지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것은 그녀가 웨일스 공에게 자신의 자녀들이 결혼을 잘 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막내딸인 콘스탄스를 당시 영국 최고의 부자였던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결혼시키기 위해서 웨일스 공에게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습니다. 


팻시의 막내딸인 콘스탄스



1915년 팻시는 딸인 웨스트민스터 공작부인의 병원에 있던 전투로 인한 공황 장애를 앓고 있던 한 젊은 군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그와 관계를 맺게 되는데, 팻시는 그를 군대에서 승진시키려 했고 이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스캔들이 됩니다.


팻시의 남편은 1917년 사망했으며 그녀는 2년후인 1920년 사망했습니다.


팻시의 큰딸인 데이지는 유럽 최고의 상속자였던 폴란드 출신의 플레스 공과 결혼했고 이 결혼식에 웨일스 공은 물론 빅토리아 여왕까지 참석했다고 합니다만 결국 둘은 이혼했습니다. 팻시의 아들인 조지는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인 제니 제롬과 결혼해서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죠. 막내딸인 콘스탄스는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결혼햇지만 이들 역시 이혼하게 됩니다.


데이지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