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뭐 대충 에드워드 7세로 넘어가기로 했는데, 첫번째 정부 이름부터 난감하드랩니다.
프랑스 출신이라는 데 이름이 흠..독일에서 이민간것이라고 생각하렵니다. --;;;
정부들과 그 후손들...(229) 오르탕스 슈나이더 : 에드워드 7세의 정부
오르탕스 카트린느 슈나이더
라 스네데
Hortense Catherine Schneider,
La Snédèr,
(30 April 1833 in Bordeaux, France – 5 May 1920, in Paris, France)
후에 라 스네데 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오르탕스 캐서린 슈나이더는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3살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으며 12살때부터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무대에 설 기회를 노리게 됩니다.1853년 20살의 나이로 아쟁에서 도니체티의 오페라 La favorite로 데뷔했다고 합니다.
슈나이더는 많은 예술가들처럼 파리로 가는데 처음에 갔던 극장에서 퇴짜를 맞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펜바흐를 소개받았으며 이후 1855년 파리에서 데뷔하게 됩니다. 그녀는 곧 성공하게 되는데 특히나 오펜바흐의 오페라에 연이어서 출연하면서 더욱더 성공하게 됩니다. 아마도 오펜바흐는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를 극장에 소개시켜줬으며 자신의 오페라에도 출연시킨것일 것입니다. 슈나이더는 파리로 오면서 그녀의 이름인 오르탕스를 쓰지 않고 아마도 예명으로 알려진 라 스네데를 쓰게 되는데 그 이유는 오르탕스라는 이름이 황제의 어머니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의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슈나이더는 성공적인 오페라 가수로 파리는 물론 런던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공연을 했었습니다.
오펜바흐
슈나이더는 많은 오페라 가수들처럼 자신을 후원해주는 높은 신분의 권력자들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녀는 1858년 그라몽-카데루스 공작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으며, 후에 공작은 죽기전 슈나이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위해 재산을 물려줬다고 합니다.
배우이자 오페라 가수로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슈나이더는 사교계에서도 매우 유명해지게 됩니다. 특히 프랑스를 방문하던 왕족들은 자주 그녀를 보길 원했으며 많은 왕족들과도 연애관계가 됩니다. 그녀는 파리를 자주 방문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인 웨일스 공의 정부로도 알려져있기도 합니다.
에드워드 7세, 웨일스 공 시절
세월이 흐르면서 슈나이더의 인기는 퇴색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인기가 절정이었던 나폴레옹 3세의 통치가 끝나고 프랑스가 다시 공화국이 되면서 그녀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지게 되죠. 아마도 그녀는 1878년 이후 거의 은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만 1880년 오펜바흐가 죽은뒤로는 완전히 무대에서 떠나게 됩니다.
이후 슈나이더는 스스로를 이탈리아 백작이라고 말하는 한 남자와 만났고 그와 결혼했지만 결혼 직후부터 별거했다고 합니다. 이후 슈나이더는 파리에서 계속 살다가 1920년 사망했습니다.
슈나이더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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