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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24) 메리 앤 클락 : 요크 공작 프레드릭의 정부

엘아라 2019. 4. 2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조지 3세의 아들들이 결혼하지 않고 정부들이랑 살았었는데 그걸 찾아보려니까 자료가 많이 없네요 아하하..-0-;;; 그래서 있는 사람만 해볼까합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224) 메리 앤 클락 : 요크 공작 프레드릭의 정부



메리 앤 클락

메리 앤 톰슨

Mary Anne Clarke 

Mary Anne Thompson

(3 April 1776 – 21 June 1852) 



결혼후 메리 앤 클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메리 앤 톰슨은 1776년 런던에서 가난한 소매상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매력적이고 똑똑했다고 알려진 마리 앤은 18살이 되기전에 클락이라는 성의 석공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는데 그녀의 남편은 파산했고 남편이 파산하자 메리 앤은 그를 떠났다고 합니다.


아마 남편을 떠난뒤 메리 앤은 아마 먹고살 길을 찾아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코르티잔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코르티잔 Courtesan은 당대 사교계에서 부유층이나 상류층의 남성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던 직업여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매춘이 포함되었고 이 코르티잔들은 권력자들이나 부유층 또는 유명인의 정부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1803년 경에는 꽤나 유명한 인물이 되었었죠.


이때 메리 앤에게 관심을 갖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조지 3세의 둘째아들이자 군인으로 당시 영국군 총 사령관이었던 요크와 알바니공작 프레드릭이었습니다.  그는 1791년 프로이센의 프레데리케와 결혼했었지만 둘 사이는 행복하지 않았고 결국 부부는 평생 별거하면서 생활했었습니다. 


요크 공작 프레드릭

조지 3세의 둘째아들


결국 메리 앤은 왕자의 정부가 되었으며 프레드릭은 메리 앤에게 매우 멋진 집을 마련해주면서 함께 살았습니다만 곧 문제가 발생합니다. 프레드릭은 메리 앤과 함께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지만 이런 생활을 계속할 돈을 마련하는데 실패합니다. 게다가 1809년에는 메리 앤이 요크 공작이 알고 있던 군사 기밀을 팔아넘겼다는 혐의까지 받으면서 의회에 소환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메리 앤과 요크 공작은 조롱과 농담꺼리가 되었으며 요크 공작은 자신의 지위를 잠시 사퇴해야하기까지 했었습니다.


메리 앤 클락에 대한 풍자 캐리커쳐


요크 공작은 잠시 총사령관직에서 물러나고 다시 복직되기전 메리 앤과의 관계를 정리하려합니다. 메리 앤은 그와의 관계를 책으로 출판하려 했기 때문일듯합니다. 어쨌든 메리 앤은 결국 왕자와의 관계에 대한 책을 출판했고 이 때문에 스캔들은 크게 번졌으며 메리 앤은 결국 런던을 떠나라는 압력을 받게 되어서 런던을 떠나야했습니다. 이후 1813년에 메리 앤은 명예훼손 혐의로 9개월간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메리 앤은 프랑스로 갔으며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메리 앤은 클락과의 사이에서 엘렌 딸을 낳았는데 이 딸은 후에 프랑스 인과 결혼했습니다. 엘렌의 아들은 작가이자 카툰리스트로 활동했던 조지 뒤 무리에였으며 조지 뒤무리에의 손녀인 대프니 뒤무리에는 극작가로 활동했었으며 자신의 고조모중 한명이었던 메리 앤에 대한 소설을 쓰기도했다고 합니다.


대프니 뒤무리에

그녀의 할아버지는 영국에서 활동했고 할머니는 배우였다고 합니다. 배우로 일한 아버지와 작가가 된 그녀는 이런 조상의 재능을 물려받은것일듯 합니다.

그녀는 후에 프레드릭 브라우닝 장군과 결혼하는데 브라우닝 장군은 "영국 공수부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