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사람들...(109)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니콜라이 1세의 손녀

엘아라 2019. 5. 1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올가 여대공에 대해서는 앞에 새해 특집으로 한번 해서 최대한 간단히 해볼까합니다 --;;;;


로마노프 가문의 사람들...(109)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니콜라이 1세의 손녀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

그리스의 올가 왕비 

Olga Constantinovna of Russia 

(3 September [O.S. 22 August] 1851 – 18 June 1926)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은 1851년 부모의 궁전이었던 파블로프스크 궁전에서 황제 니콜라이 1세의 둘째 아들이었던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그의 아내인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와 함께 있는 올가 


올가는 둥근 얼굴에 큰 푸른 눈을 가진 소녀였으며 이후 매우 수줍음 많은 소녀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위로는 오빠인 니콜라이가 있었고 아래로는 동생들이 있었는데 올가는 오빠인 니콜라이와 매우 친한 사이였으며 후에 니콜라이가 타슈켄트로 추방당한후에서 오빠와 연락을 하고 지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오빠 니콜라이와 함께 있는 올가



올가는 러시아 황실과 인척관계가 되는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를 1863년 처음 만났었습니다. 이후 게오르기오스 1세는 1867년 여동생이자 러시아 황태자비인 덴마크의 다우마(마리야 표도로브나)를 만나러 왔었죠. 그가 러시아 궁정으로 온 이유는 정교회를 믿는 왕비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후보로 거론된 인물이 바로 올가였죠. 이때 올가는 겨우 16살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버지인 콘스탄틴 대공은 결혼을 반대했지만 어머니인 알렉산드라 대공비는 딸이 언제까지 16살이 아니라면서 결혼에 찬성했으며 결국 올가는 1867년 10월 게오르기오스 1세와 결혼해서 그리스의 왕비가 됩니다.



약혼자인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와 어머니 오빠 남동생들과 함께 있는 올가 



결혼 직후 올가는 너무 어렸기에 왕비로써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한 이야기에서는 올가가 없어져서 찾아보니 한쪽 구석에서 자신의 테디베어를 안고 울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게다가 올가는 17살에 첫아이인 콘스탄티노스를 낳았기에 더욱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초반의 힘든것을 결국 극복했고 올가는 그리스에서 점차 더 존경받는 왕비가 됩니다. 그녀는 많은 왕족들처럼 사회사업을 했으며 고아를 위한 고아원이나 자선병원등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그리스 정치는 그리스 사회에서 늘 올가에 대해서 호의적이지는 않는 상황을 만듭니다. 특히 러시아 여대공이었던 올가의 신분때문에 반 러시아측 진영에서 직접적으로 올가를 거론하면서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또 올가는 여전히 고대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읽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면서 현대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것을 지원했지만 이것은 도리어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습니다.



그리스 전통 복장의 올가 왕비


그리스의 복잡한 사정은 그리스왕가 사람들을 자주 국외로 나가게 만들었으며 올가역시 이런상황때문에 시집이 있는 덴마크로 가기도 했으며 친정인 러시아에서도 자주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올가가 오래도록 그리스를 떠나게 되는 계기가 생깁니다. 바로 남편인 게오르기오스 1세가 1913년 암살되면서였습니다. 남편의 죽음은 올가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으며 그리스를 떠나 친정식구들이 있는 러시아에 자주 오래 머물도록했었습니다.


1차대전은 다른 많은 왕족들처럼 올가에게도 많은 슬픔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올가의 친정이었던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당시 러시아에서 머무르고 있던 올가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했었습니다. 게다가 올가의 사위나 조카들은 혁명으로 살해당하기도 했었죠. 또 올가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1세는 중립을 선언했다가 그리스 내부의 반발에 부딪혀 망명생활을 해야만 하기도 했었습니다. 올가 역시 아들을 따라 망명생활을 했었죠.



막내아들인 크리스토포로스 왕자와 그의 아내인 아나스타샤 왕자비(낸시 리즈)의 결혼식에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있는 올가 왕비



1920년 망명중인 그리스 왕가에 갑작스러운 소식하나가 전해집니다. 그리스에서 국왕지위를 이어가고 있었던 올가의 손자 알렉산드로스가 갑작스럽게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었죠. 올가의 며느리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인 소피아 왕비는 아들 곁으로 가고 싶어했지만 그리스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고 그나마 왕가에서 가장 존경받던 인물인 올가 왕비만이 그리스로 오도록 허락받습니다. 그러나 올가 왕비는 손자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었죠. 대신 올가 왕비는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1세가 돌아올때까지 잠시 그리스의 섭정지위를 맡았습니다.


그리스의 혼란한 정치 상황은 콘스탄티노스 1세가 돌아왔다가 또 망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올가 왕비는 아들을 따라 다시 망명길에 올랐으며 결국 그리스로 돌아가지 못한채 1926년 사망했습니다. 그후 1935년 올가의 손자인 게오르기오스 2세가 그리스의 국왕으로 복위한뒤 게오르기오스 2세는 망명중 사망한 왕실 가족들의 묘를 타토이로 이장했으며 올가 왕비 역시 현재 타토이에 묻혀있습니다.



올가 왕비

필립 드 라즐로의 그림


올가 왕비는 게오르기오스 1세와의 사이에서 다섯명의 아들과 세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그중 막내딸인 올가를 제외한 나머지 자녀들은 모두 성인으로 성장해서 후손이 있었습니다.

장남인 콘스탄티노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국왕이 되었으며 콘스탄티노스의 아들들 역시 그리스의 국왕이 되었죠. 현 그리스 왕가의 수장인 콘스탄티노스 2세는 콘스틴티노스 1세의 손자로 올가의 증손자입니다.

둘째아들인 게오르기오스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이자 정신과의사였던 마리 보나파르트와 결혼해서 두명의 자녀를 뒀었습니다.

셋째 아들인 니콜라오스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의 손녀인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결혼해서 세명의 딸을 낳았는데, 셋째딸인 마리나는 현 영국 여왕의 숙부였던 켄트 공작과 결혼햇었습니다.

넷째 아들인 안드레아스는 바텐베르크의 앨리스와 결혼했으며, 안드레아스의 아들인 필리포스는 현 영국 여왕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막내 아들인 크리스토포로스는 미국 상속녀였던 낸시 리즈와 첫번째 결혼을 했었는데 아내가 암으로 죽은 뒤 오를레앙 가문 출신인 프랑수아즈 도를레앙과 재혼했습니다. 그리고 둘사이에서 아들인 마히엘이 태어났는데 미하엘은 러시아와 그리스 오를레앙 등 가문에 대한 책을 써서 작가로 알려져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