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07) 작센-알텐부르크의 알렉산드라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네번째)
작센-알텐부르크의 알렉산드라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
Grand Duchess Alexandra Iosifovna of Russia
Princess Alexandra Friederike Henriette of Saxe-Altenburg,
(8 July 1830 – 6 July 1911),
딱 봐도 느낌오는 빈터할터 그림
...그러고보니 알렉산드라는 슈틸러 그림도 있고 빈터할터 그림도 있군요.
부부사이가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였습니다. 부부사이가 점점 더 멀어지게 된것은 정치적 문제가 콘스탄틴 대공에게 좌절감을 줬기 때문일듯합니다. 콘스탄틴 대공은 형인 알렉산드르 2세의 정책에 따라서 농노제 폐지나 해군의 개혁등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개혁정책을 진행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으며 콘스탄틴 대공 역시 일을 진행하면서 좌절감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폴란드 총독직을 그다지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것에 매우 큰 타격을 받게 되죠. 이런 상황은 결국 콘스탄틴 대공이 골치아픈 정치적 문제보다는 개인적인 즐거운 삶을 즐기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
그는 형을 도와 많은 일을 했고 이때문에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겉늙어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치적 좌절은 그가 좀더 즐거운 삶을 사는데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부부는 그래도 장녀인 올가 콘스탄티노브나가 결혼할때까지는 그럭저럭 무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올가 여대공은 겨우 16살에 그리스로 시집갔는데 혼담이 나왔을때 아버지인 콘스탄틴 대공은 올가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혼담에 반대했지만 알렉산드라 대공비는 딸이 언제까지 16살은 아닐것이라면서 결국 혼담에 긍정적이었으며 올가는 그리스로 시집가게 되죠.
큰딸인 올가와 함께 있는 알렉산드라 대공비
올가가 시집갈 무렵인 1867년
이렇게 부부간의 견해가 어긋나는 것은 사실 부부사이의 마찰이 드러난 것 뿐이기도 했었습니다. 부부는 서로 너무나 다른 성향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성향도 달랐습니다. 알렉산드라는 보수주의자였으며 콘스탄틴 대공은 자유주의자였죠.이런 문제마저 다르게 되면서 부부의 불화는 점차 더 심해지게 되죠. 부부는 점차 더 멀어져가게 되죠.
콘스탄틴 대공과 알렉산드라 대공비
콘스탄틴 대공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들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1860년대 말 그는 첫 사생아 딸을 얻게 되죠. 마리라는 이름의 이 딸은 훗날 이복언니인 올가에게 보내져서 그리스에서 시녀로 일했으며 그리스 은행가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딸이 태어난 직후 콘스탄틴 대공은 또다른 여성과 연애질을 시작합니다.
1868년 콘스탄틴 대공은 젊은 발레리나였던 안나 바실리예브나 쿠즈네트소바를 따라다닙니다. 대공보다 20살이나 어렸던 이 발레리나는 처음에는 대공을 무시했지만 결국 대공의 정부가 되었으며 1873년 대공의 아이를 낳게 되었고 콘스탄틴 대공은 이 발레리나와 아예 대놓고 살림을 차리는데 그것도 파블로프스크 궁전 근처에 매우 크고 아늑한 집을 구해주게 됩니다. 이것은 아내의 눈앞에서 정부와 살림을 차리는 것으로 당대에도 이것은 용납할수 없는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콘스탄틴 대공의 정적들은 대공을 망신주기 위해서 이 사실을 널리 퍼트렸으며 이것은 알렉산드라에게 망신꺼리이기도 했었습니다.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
..이사진 보고서 딸인 베라 여대공이랑 정말 많이 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
게다가 알렉산드라에게는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장남인 니콜라이 콘스탄티노비치는 철없이 인생을 막 살았는데 어머니가 조부모에게서 결혼 선물로 받은 이콘에서 다이아몬드를 훔쳐서 정부에게 줬었다고 합니다. 이 일로 니콜라이는 추방당하게 되는데, 알렉산드라는 이 결혼 이콘이 훼손 당한것에 충격받았으며 자신의 결혼 생활도 결국 불행해지게 될것이라는 징조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사건은 부부사이의 갈등을 더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당대 아이들의 교육은 어머니의 몫이라고 여겨졌었는데 아들이 사고친것에 대해서 아마 콘스탄틴 대공은 아내를 비난했을 것이며 아마도 잘한것 없는 남편의 이런 비난에 알렉산드라 역시 매우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장남인 니콜라이와 장녀인 올가와 함께 있는 알렉산드라 대공비
더우기 그녀는 물론 가족들이 가장 사랑했던 막내인 비아체슬라프가 1879년 16살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녀는 더욱더 충격을 받게 되죠.
비아체슬라프 콘스탄티노비치 대공
알렉산드라의 막내아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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