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06) 작센-알텐부르크의 알렉산드라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세번째)

엘아라 2019. 4.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06) 작센-알텐부르크의 알렉산드라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세번째)



작센-알텐부르크의 알렉산드라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

Grand Duchess Alexandra Iosifovna of Russia 

Princess Alexandra Friederike Henriette of Saxe-Altenburg,

(8 July 1830 – 6 July 1911),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는 붉은 기가 도는 금발에 크고 푸른 눈동자의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뚝한 코와 아름다운 입을 가지고 있었죠. 게다가 매우 우아하기까지해서 당대 러시아 궁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중 한명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녀는 매우 지적이었으며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강한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그녀와 그녀의 남편인 콘스탄틴 대공은 음악에 대한 공통 취미가 있었으며 이때문에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알렉산드라 대공비를 위해서 곡을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런 음악에 대한 애정은 음악을 널리 알리는데도 영향을 주는데 파블로프스크 궁전이 있는 파블로스크의 역 콘서트홀에서는 여러 작곡가들의 음악회들이 자주 연주되었으며 중산층들이 주로 이곳에서 연주회를 들었기에 콘스탄틴 대공 가족들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도 역시 올라갔다고 합니다.


또 알렉산드라는 많은 왕가의 여성들처럼 사회사업도 열심히였는데 고아원을 운영하는 등의 일을 맡았으며 이런 일들은 그녀가 러시아에서 매우 존경받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지적이었으며 사회사업에도 열심히였던 알렉산드라에 대해서 러시아의 황제들은 그녀에게 매우 호의적이었으며 나중에는 존경심을 가지고도 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라 대공비 

1857년


알렉산드라와 콘스탄틴 대공의 결혼 생활은 초반에는 매우 순조롭고 행복했었습니다. 알렉산드라는 콘스탄틴 대공과의 사이에서 모두 여섯아이를 낳았는데 1850년 장남인 니콜라이가 태어났으며 다음해에는 올가가 1854년에는 베라가 태어났고 1858년에는 콘스탄틴이 그리고 1860년에는 드미트리가 태어났으며 1862년에는 막내인 비야체슬라프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알렉산드라 대공비


콘스탄틴 대공은 해군이었기에 당대 많은 해군 장교들처럼 집을 자주 비웠으며 알렉산드라 대공비는 아이들을 키우고 사교생활을 하면서 살았었죠. 이런 부부관계는 사실 서로 너무나 달랐던 부부가 오래도록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수 있는 비결이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달랐지만 자주 떨어져있었기에 서로에 대한 불만을 잊을수 있었던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콘스탄틴 대공은 정치적 이유로 폴란드 총독이 되었으며 가족들은 모두 폴란드로 옮겨가서 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서로 성격이 전혀 다른 부부가 점점더 마찰을 빚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같이 살던 초기에는 이런 문제가 덜했을수도 있습니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는 더욱더 심해지게 됩니다. 게다가 자녀들 문제까지 부부에게 생기게 되면서 부부 사이는 점차 더 악화 되었을 것입니다.



딸인 올가와 함께 있는 콘스탄틴 대공 부부


1861년 콘스탄틴 대공은 폴란드 총독이 되었으며 가족들과 함께 폴란드로 갑니다. 이때 대공의 둘째 딸인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녀는 폭력적 행동을 하게 되었으며 예절에 어긋나는 일도 했죠. 왕족들은 공개된 자리에서는 절대 어떤 흠잡힐 일을 해서는 안되었는데 베라의 공공연한 행동은 스캔들감이 될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안그래도 민감한 폴란드 상황이었기에 콘스탄틴 대공과 알렉산드라 대공비는 총독의 딸이 비상식적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뒷말이 나올것을 우려했고 딸을 일단 폴란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려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콘스탄틴 대공의 누나였던 올가 니콜라예브나는 조카를 맡아주기로 했고 베라는 이후 뷔르템베르크에서 주로 살아가게 되죠.


대공 부부가 딸을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아이를 보내게 된것은 아무래도 부부사이에 무엇인가 갈등의 요인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베라는 뷔르템베르크에서 상태가 매우 좋아졌고 (콘스탄틴 대공은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훗날 부모가 있는 러시아로 자주 여행을 가서 가족들과 친하게 지냈었습니다. 



고모와 고모부인 뷔르템베르크 국왕 부부와 함께 있는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