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프랑스는....흠..손대기가 무서운곳인데 어떻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금 메로빙거 왕조부터 해야하나 아니면 카롤링거 왕조부터 해야하나 위그 카페부터 해야하나 고민중입니다.
일단 위그 카페나 메로빙거 왕조 둘중에 하나로 시작해야할것같은데 위그 카페로 하면 좀더 편하긴 하지만 10세기부터 하는 것이구요. 아니라면 5세기 프랑스라는 나라의 영토를 확립했던 첫번째 국왕이었던 클로비스부터 시작하면 자료가 애매합니다. 나라 역사도 이야기하기 머리 아프구요 =-=
일단 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ㅠ.ㅠ
프랑스의 왕비들...(1) 들어가면서...간략한 프랑스 왕국사
프랑스는 다른 많은 나라들처럼 선사시대와 고대시대를 거쳤습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비옥한 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남부 프랑스 지방에 정착해서 무역항을 세우기도 했었습니다. 프랑스는 여러 민족들이 와서 정착하던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앙집권화가 아닌 부족 단위의 작은 나라들이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죠. 이 부족들을 통합한것은 바로 강력한 외부 세력인 로마제국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오래도록 "갈리아"지방이라고 부르던 이 프랑스 지방을 점령하려했습니다. 특히 유명한 카이사르는 갈리아와 전쟁을 치루면서 "갈리아 전기"라는 글을 썼으며 이 글은 현재까지도 번역되는 글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로마에 복속된후 갈리아 지방은 오래도록 로마화가 됩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약화되고 외부에서 새로운 게르만 세력이 유입되면서 이 지역을 약탈하거나 결국 정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마제국의 몰락은 이전에 로마화 된 많은 지역의 국가 시스템을 혼란하게 만들었고 이 갈리아 지방도 다르지 않았죠.
국가 조직이 정비가 된 것은 바로 클로비스 국왕 시절입니다. 메로빙거 왕가의 국왕인 클로비스는 분할된 지역들을 군사력을 통해서 흡수 통합해서 현재 프랑스 지역이 될 지방의 통합을 이룬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주변의 다른 기독교 군주들과 달리 가톨릭을 받아들였으며 로마의 주교(교황)으로부터 그의 세속적 지위에 대한 승인을 받았으며 프랑크 인들의 국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고 프랑크 왕국을 성립하게 됩니다.
클로비스
하지만 클로비스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분할 상속을 했으며 그가 통합한 프랑크 왕국은 여러개의 나라로 쪼갈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과도한 권력투쟁을 일어나게 만들었으며 결국 메로빙거 왕가가 몰락하게 만들었습니다.
메로빙거 왕가가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그 중간의 권력은 왕실의 집사 역할을 했던 궁정 행정가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페펭 가문의 이 지위를 독점하게 되면서 국왕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되죠. 결국 교황은 페펭 가문 출신인 페펭 르 브레프에게 왕위계승권리의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이후 페펭 르 브레프의 아들인 샤를먀뉴는 결국 로마제국의 황제라는 호칭까지 받게 되죠. 그리고 이 가문은 카롤링거가문이라고 불리게 되죠.
샤를마뉴
16세기 그림
하지만 샤를마뉴의 손자들은 계승권을 놓고 격렬하게 싸웠으며 결국 베르됭 조약으로 샤를마뉴가 통합한 나라는 분리되게 됩니다. 여기서 독일과 프랑스가 갈리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이죠. 베르됭 조약이후 프랑스에서는 봉건제도와 지방분권제도가 정착했으며 이것은 지방의 여러 통치자들의 권력을 점차 강화시키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카롤링거 가문이 쇠퇴하면서 지방 군주였던 여러 귀족들이 권력을 장악햇으며 심지어 국왕으로 선출되기도 합니다. 특히 강력한 노르드인들이었던 바이킹의 침략은 이런 귀족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있었으며 특히 앙주와 블루아 백작 지위를 가지고 있던 로베르 가문이 득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가문 출신의 위그 카페가 바로 국왕으로 선출되게 되면서 프랑스의 카페 왕가의 시조가 됩니다.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왕국은 사실 이 위그 카페가 국왕위에 오르면서 형성된 나라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위그카페
19세기 그림
카페 왕가의 초기는 역시 주변의 강력한 귀족들의 압력에 시달렸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가문이 바로 바이킹 출신으로 노르망디를 점령한 노르망디 공작 가문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멀리 시칠리아까지 나가게 되는데 노르망디 공작은 무력으로 잉글랜드를 점령해서 잉글랜드의 국왕 지위까지 얻게 되죠.
카페 왕가는 귀족들과 연합, 정략결혼등을 통해서 세력을 점차 넓혀나가게 됩니다. 위험한 시기도 있었지만 결국 점차 왕권은 강력해져갔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4세는 프랑스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하지만 그의 아들들은 남성 후계자를 얻지 못했고 이것은 백년전쟁의 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필리프 4세와 자녀들 그리고 동생
필리프 4세의 세아들들에게 모두 남성 후계자가 없게 되면서 카페 왕가 직계가 단절됩니다. 그리고 왕위는 필리프 4세의 조카였던 발루아 백작 필리프 6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만 여기에 프랑스 내 영지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던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3세가 개입하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인 이자벨이 필리프 4세의 딸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상속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되죠.
필리프 6세
발루아 가문의 시조
발루아 가문은 카페 가문의 분가입니다.
앙리 4세
부르봉 가문 출신의 첫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
나폴레옹
샤를 10세
부르봉 본가의 마지막 통치 군주
루이 필리프 도를레앙
오를레앙 가문 출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통치 군주
나폴레옹 3세
자료출처
1. 프랑스사 (앙드레 모루아, 2016, 김영사)
2.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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