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네 죽이되건 밥이되건 메로빙거 왕가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이거 다하려면 한 오년은 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아하하..-0-;;;;;
프랑스의 왕비들....(2) 메로빙거 왕가
메로빙거 왕가는 살리 프랑크인 출신의 왕가입니다. 살리 프랑크인들은 프랑크 인들의 부류로 현재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도 원래는 다른 많은 프랑크인들처럼 독일의 라인강 인근에서 살던 부족중 하나였었다고 합니다.
1720년경에 만들어진 메로빙거 왕가의 시조인 메로베의 메달
메로빙거 왕조는 반전설상의 인물인 메로베(메로베우스)의 이름을 딴것입니다.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칠데리크(힐데리크, 킬데리크)였으며 그의 손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바로 클로비스 입니다. 특히 클로비스는 그의 생전에 프랑크 인들의 영지 대부분을 통일한 인물로 현 프랑스에서는 부르고뉴 지역 제외한 지역과 독일에서는 작센 지역을 제외한 지역을 통합해서 통치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때문에 프랑스는 물론 독일사에서도 이 클로비스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이런 통합은 프랑스사에서는 프랑스의 현재 영토를 확정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클로비스의 아버지인 칠데리크 1세의 씰
유럽 대부분을 통합했던 클로비스에게는 네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클로비스는 이 네며으이 아들들에게 왕국을 분할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자들 역시 이런 전례를 따르는 것이죠. 이것은 프랑크식의 상속방식중 하나로 자식들에게 재산과 영지를 분배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클로비스 사후 메로빙거 왕가가 통치하는 지역이 분열되면서 군주들의 영향력이 점차 더 약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메로빙거 가문의 통치 영역
613년 메로빙거 왕가의 국왕중 한명이었던 클로타르 2세는 다시 한번 프랑크인들이 살던 지역 대부분을 통합하게 됩니다. 하지만 잦은 전쟁으로 인해서 왕권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으며 대신 군공을 세우던 여러 지역 영주들이 점차 힘을 얻게 되게 됩니다.
클로타르 2세의 금화
결국 왕권은 점차 약해지게 되었으며 궁정 관리인이 점차 힘을 얻게 되는데 특히 페펭가문이 힘을 얻게 되죠. 특히 페펭 가문 출신으로 후에 카롤링거 왕가의 선조가 되는 페펭(Pépin le Bref)이 메로빙거 왕가의 마지막 왕이었던 킬데리크3세(킬데리쿠스 3세)를 몰아내서 교황에게서 프랑크 왕국의 국왕으로 승인 받으면서 메로빙거 왕가의 통치가 끝나게 됩니다.
메로빙거 가문의 최후
19세기 그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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