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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3) 부르군트의 클로틸드 : 클로비스의 왕비 (첫번째)

엘아라 2019. 5. 1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카페 왕가 이전의 시기는 뭐랄까 프랑크인들 전체의 역사이기에 독일과 프랑스 동시의 역시이기도 합니다. 이때문에 이름표기가 참 난감하네요 -0-;; 독일식도 있고 프랑스 식도 있고 라틴어식표기도 있고 말입니다.


사실 라틴어 표기가 가장 무난한듯합니다만 뭐랄까 그러니까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에 좌절중입니다.

(전 라틴어식 이름은 아무리 봐도 난해하더라구요..ㅠ.ㅠ)


프랑스의 왕비들....(3) 부르군트의 클로틸드 : 클로비스의 왕비 (첫번째)




부르군트의 클로데킬디스

성 클로틸드

Saint Clotilde (c. 474–545)

 ClothildeClotildaClotildRotilde etc. 

(Latin: ChrodechildisChlodechildis),

19세기 그림


후에 가톨릭의 성녀로 시성되는 부르군트의 클로틸드는 부르고뉴(부르군트) 왕국의 국왕이었던 힐페리크 2세Chilperic II (킬페리쿠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르군트 왕국은  스칸디나비아 지방쪽에서 이주해온 동쪽의 독일계 사람들이었던 부르군트인들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들은 3세기경 폴란드 인근에 정착했었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역사적 기록은 아니지만 부르군트 왕국에 대한 기록은 4세기 말부터 등장한다고 합니다. 특히 411년 군나르 또는 군테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부르군트의 국왕은 로마로부터 라인강 서방 지역중 라인팔트 지방 일부와 현재 프랑스 지방 일부를 얻어냈고 보름스를 수도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군나르와 부르군트 인들은 서로마와 동맹을 맺었던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의 침입을 받았으며 결국 군나르는 물론 부르군트인들 부족 조직 대부분이 파괴되고 보름스 역시 아틸라의 수중에 들어가서 파괴딥니다. 이후 살아남은 부르군트인든을 로마에 복속되었으며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으며 아틸라를 이용해서 부르군트 왕국을 무너뜨렸던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보호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이들은 군나르의 아들로 추정되는 군디오크Gundioc를 중심으로 뭉쳤고, 아에티우스는 이들을 현재 사보이 지방에 정착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힘을 얻고 있던 게르만족 부족 연합인 알레마니 Alemanni를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왕국의 새 수도는 제네바였습니다.


5세기 무렵의 부르군트 왕국 영역


군디오크가 죽은뒤 군디오크의 동생이 왕위를 이었다가 다시 군디오크의 네아들들이 영지를 분할해서 통치하게 됩니다. 이 군디오크의 네아들들중 장남이었던 힐페리크가 바로 클로틸드의 아버지였습니다.


클로틸드의 아버지였던 힐페리크의 죽음과 그 뒷이야기 그리고 클로틸드가 클로비스와 결혼하게 된 이야기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정략결혼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져온다고 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은 6세기 투르의 주교이자 역사가였던 투르의 게오르기우스가 쓴 자료에서 전하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투르의 게오르기우스는 힐페리크가 동생이자 후에 부르군트 왕국의 강력한 통치자가 된 군도바드에게 살해당했으며 그의 아내는 목에 돌을 감은채 강제로 익사당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힐페리크의 딸중 한명인 크로마Chroma는 강제로 수도원에 들어가야했고 클로틸드는 추방당해야했으며 이런 사건을 거친후 클로틸드는 클로비스와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군도바드의 조상

20세기


이 이야기는 어느정도 진실을 담고 있을수 있지만, 완전히 진실은 아닐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이를테면 힐페리크가 죽은뒤 그의 아내이자 클로틸드의 어머니도 살해당했다고 하지만 정작 힐페리크가 죽은뒤 그녀는 딸들을 데리고 또다른 시동생이었던 고데기실Godegisil 의 통치지역인 제네바로 갔다고 합니다. 크로마가 수녀원에 들어간 것 역시 사실일 가능성이 크지만 크로마는 성 빅토르 교회를 세웠던 인물로 알려져있기에 그녀가 과연 강제로 수녀원에 들어갔다는 것은 좀 고민해봐야할듯합니다. 그리고 클로비스와 클로틸드의 결혼 역시 고데기실이 클로비스와 동맹을 맺으면서 결정된 결혼이기도 했었죠.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은 훗날 클로비스와 클로틸드의 아들들이 외가인 부르군트 왕국을 공격하면서 그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이야기였을수도 있을 듯합니다. 


클로틸드는 어린시절부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성장했는데 이것은 그녀의 가족들이 가톨릭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고데기실이 형인 힐페리크와 함께 가톨릭을 믿었을 것이며 반면 군도바드는 아리우스파를 믿었다고 합니다. 아리우스파는 대충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종파로 이는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이단으로 지목된 종파이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클로틸드의 아버지와 고데기실이 군도바드와 대립한다던가 클로틸드의 어머니가 고데기실에게 자녀들과 함께 몸을 의탁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기도 중인 성 클로틸드

14세기



클로틸드는 어쨌든 정치적 문제로 클로비스와의 혼담이 진행되는데 아버지가 죽은 그해에 혼담이 진행되고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클로틸드와 클로비스의 결혼

17세기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

2.http://www.newadvent.org/cathen/04066a.htm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