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 마치면서

엘아라 2019. 4.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 맺음말을 써야지 다음달부터 프랑스 왕비들을 하는데 말이 생각이 안나네요.

머리가 텅텅빈 느낌이랄까요..아하하..-0-;;;


...에마를 새해 특집으로 하려니 예스에서 책을 겨우 구했다고 하는군요.

오래 기다려야하고 책 상태도 안 좋을수 있다는데....

이거 오기로라도 내년 새해특집 해볼까하네요 헐..-0-;;;

사실 제목도 생각해놨습니다. "두왕의 왕비, 두왕의 어머니"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 마치면서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는 칠왕국시대에서 좀더 중앙집권제 국가로 발전하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외부의 적을 맞닥들이게 됩니다. 바로 바이킹이라고 불리는 노르드인들이었죠. 노르드인들의 침공은 느슨하게 묶여있던 앵글로-색슨인들의 나라를 하나로 묶게 만들었고 그 나라가 바로 잉글랜드라는 나라로 성립되게 된것이었습니다.


앨프레드 대왕

실질적으로 잉글랜드를 성립한 인물



이런 상황은 결국 잉글랜드 결속시키는 것과동시에 다시 혼란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앨프러드 대왕이 잉글랜드를 형성하던 당시에는 잠깐 안정이 되는 듯했지만 계속된 노르드인-데인인들의 침입은 잉글랜드 내부의 혼란을 가중시키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왕비들은 매우 기본적 정보마저도 부족한 상황에서 많은 부분을 당대 불확실한 기록을 통한 추측으로 일생을 추정하고 있긴합니다. 하지만 이런 추정에서 그녀들은 복잡한 나라의 내부사정에 따라서 지위나 상태등이 변화합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정치적 문제와 연결되기에 그녀들의 삶 역시 정치적 투쟁등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게 됩니다.


웨식스의 이디스

에드워드 참회왕의 아내,

그녀는 웨식스 백작 고드윈의 딸로 그녀의 남편인 에드워드는 고드윈을 경계햇고 그녀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 의해 강제로 수녀원에 보내지기까지 했지만 친정식구들이 복귀하면서 그녀도 왕비의 지위로 다시 복귀합니다.


이를테면 정치적 문제때문에 자식이 있는 아내와 헤어지고 강력한 귀족의 딸과 결혼하기도 했으며 또 기독교식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정당한 아내인지 아니면 기독교식으로 정식 아내외의 분륜관계인지도 애매한 상황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를테면 앨프러드 대왕의 아들이었던 에드워드 더 엘더는 세명의 아내가 있었다고 여겨지는데 첫번째 아내의 경우는 단지 자식으로만 추측할수 있으며 두번째 아내는 강력한 귀족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헤어졌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아내는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했기에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죠. 


게다가 노르드 인등의 지속적 영향은 잉글랜드에서 일부다처제의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이를테면 노르드인 출신의 국왕인 크누트의 경우 첫번째 아내가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이유로 노르망디의 에마를 아내로 맞기도 했었습니다. 


두 아들과 함께 있는 노르망디의 에마


하지만 이런 왕비들은 역시나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하기도 했었고 또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거나 권력을 장악하려하거나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하는 등의 행동은 이후 시대의 많은 왕비들의 행동과 그리 다르지 않기도 합니다.


비록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추측할수 밖에 없으며 또 그런 추측이 옳은 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그녀들의 삶은 잉글랜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들과 연결되는 것이었기에 그녀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 역시 잉글랜드 역사를 이해하는 한 과정일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