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번외편3. 아가타 : 에드워드 애설링의 아내

엘아라 2019. 4. 1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번외편으로 아가타만 하고 마무리 글을 하면 드디어 잉글랜드 왕비들 끝입니다.

이전 칠왕국 시대는 뭐..--;;;;완전 잉글랜드 고대사라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웨일스는 이름 읽는것부터 만만치 않은데다가 거기도 진짜 완전 역사가 난리도 아닌지라.....


나중에 어디 책이라도 입수하게 되면 다시 할수는 있지만 과연 할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또 모를일이죠. 이를테면 노르망디의 에마에 대해서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일단 책은 질러놨습니다. 쿨럭..그거 읽어보고 괜찮으면 내년 새해특집으로 가는 것이죠.)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번외편3. 아가타 : 에드워드 애설링의 아내



아가타

에드워드 애설링

Agatha 

(before 1030 – after 1070) 


에드워드 애설링(명명왕 에드워드)은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의 아들이자 애설레드 언레디의 손자였습니다. 그는 어아버지인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가 크누트에게 패배한 뒤 형인 에드먼드 애설링과 함께 스웨덴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크누트는 스웨덴의 왕에게 이들을 살해하라고 했지만, 애설레드 언레디와 동맹관계였던 스웨덴의 왕은 아이들을 빼돌려서 키예프나 폴란드로 보내서 아이들의 목숨을 보호했으며 이들은 후에 헝가리 국왕의 보호아래서 성장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애설링 (에드워드 망명왕)

아가타의 남편


에드워드는 헝가리에 있을때 아가타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해서 세명의 아이들을 낳습니다. 하지만 많은 중세 여성들처럼 아가타의 출생과 가족 신분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들중 딸인 마거릿은 후에 스코틀랜드 국왕과 결혼했고 외손녀는 잉글랜드 왕비가 되기 때문에 중세에서부터 그녀의 가족 배경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아가타의 딸

스코틀랜드의 왕비

웨섹스의 성 마거릿

그녀는 교회에 의해서 시성되어서 성 마거릿으로 불립니다.



중세시대 기록에서는 아가타가 황제 하인리히의 친척이라고 묘사되기도 하고, 키예프 군주의 딸이라던가 헝가리 왕비의 친척이라던가 루스(러시아쪽에 정착한 바이킹 군주들)의 혈족이라던가로 묘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 그녀의 이름은 당시 서유럽에서 쓰던 이름이 아니었기에 아마도 동유럽쪽 가문의 출신이라고 추정할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단서로 그녀의 가족 배경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게 됩니다. 독일,헝가리,키예프,불가리아, 폴란드등 당시 동유럽쪽의 왕가 대부분이 아가타와 연결고리가 있을수도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설에는 문제점들이 있으며 결국 아직도 아가타의 부모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게 남아있다고 합니다. 


아가타와 에드워드 애설링은 1057년 아이들과 함께 잉글랜드로 가게 됩니다. 아마도 에드워드 참회왕에게는 후계자가 없었기에 웨섹스 왕가의 후손으로 잉글랜드의 왕위를 주장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에 온 직후 에드워드 애설링은 사망했으며 아가타는 아이들과 함께 잉글랜드에 남게 되죠.


하지만 잉글랜드 왕위는 겨우 10대였던 아가타와 에드워드 애설링의 아들인 에드가 애설링에게 돌아간것이 아니라 당대 잉글랜드 내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이었던 해롤드 고드윈선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노르망디 공작의 잉글랜드 침공으로 해롤드가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죠. 해롤드가 전사한뒤 아가타의 아들인 에드가 애설링이 국왕에 뽑힙니다만 이미 노르망디 공작과 노르만인들이 잉글랜드를 점령해 나가고 있었기에 결국 아가타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스코틀랜드로 도망갈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에드가 애설링

아가타의 아들


아마도 아가타는 스코틀랜드에서 딸인 마거릿이 스코틀랜드의 국왕 말콤 3세와 결혼하는 것을 지켜봤을 듯합니다만 이후 많은 중세 여성들처럼 그녀에 대한 기록은 더 없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