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프랑스

마자리네트와 그 후손들...(10) 모데나의 마리아 : 라우라 마르티노치의 딸

엘아라 2019. 4. 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 저 영국의 왕비들 할때 제임스 2세의 왕비인 모데나의 마리에 대해서도 썼는데 왜 기억이 안나는 걸까요..-0-;; 그러고보니 라우라가 섭정에서 축출당하는 이야기는 좀 본듯한 기억도 나고 그렇습니다. -0-;;;


마자리네트와 그 후손들...(10) 모데나의 마리아 : 라우라 마르티노치의 딸




모데나의 마리아

영국의 왕비

Mary of Modena

 Maria Beatrice Anna Margherita Isabella d'Este;

(5 October [O.S. 25 September] 1658 – 7 May [O.S. 26 April] 1718) 



모데나 공작의 딸인 마리아 베아트리스 데스테는 모데나 공작인 알폰소 4세 데스테와 그의 아내인 라우라 마르티노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모데나의 통치 군주였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마자랭의 조카들을 의미하는 일명 "마자리네트"들중 한명이었습니다. 모데나 공작이자 마리아의 할아버지였던 프란체스코 1세 데스테는 프랑스와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당대 권력자였던 마자랭의 조카인 라우라 마르티노치를 며느리로 맞은 것이었습니다.



라우라 마르티노치

마리아의 어머니


마리아의 아버지인 모데나 공작은 그녀가 4살때 사망했으며 그녀의 어머니인 라우라 마르티노치가 마리아의 동생이자 이제 미성년으로 모데나의 공작이 된 프란체스코 2세 데스테의 섭정으로 모데나를 통치했었습니다. 마리아는 어린시절 매우 교육을 잘받았으며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매우 잘했으며 라틴어도 배웠고 후에는 영어도 잘하게 됩니다.



모데나의 공작 알폰소 4세 데스테

마리아의 아버지



1671년 영국의 요크 공작 제임스는 아내를 잃었으며 곧 신붓감을 구하게 됩니다. 그는 유럽 왕가의 여러 여성들을 고르는데 여기에는 모데나의 마리아도 포함됩니다. 프랑스에서는 영국과의 우호를 위해서 이 혼담을 추진했다고 합니다만 마리아의 어머니인 라우라는 처음에는 이 혼담을 그다지 탐탁치 않아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딸보다 25살이나 많은 홀아비로 요크 공작의 장녀인 메리는 자신의 딸보다 겨우 네살밖에 어리지 않았기 때문일듯합니다. 게다가 라우라는 딸을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2세와 결혼시키길 원했다고 합니다만 루이 14세는 에스파냐 국왕은 자신이 아끼는 조카이자 요크 공작의 조카이기도 한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과 결혼시키려했기에 결국 라우라는 딸과 요크 공작의 혼담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요크 공작 제임스

후에 영국의 제임스 2세


이 결혼은 프랑스에서는 매우 지지하는 결혼이었지만 반 가톨릭성향이 강했던 잉글랜드 의회에서는 매우 격노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의회에서는 결혼을 무효화하려고까지했었습니다만 결국 제임스와 마리아의 결혼은 인정받게 됩니다.


이후 마리아는 영국으로 갔으며 이제 영국식으로 "메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영국 생활을 쉽지 않았는데 가장 큰 원인은 잉글랜드에서의 강한 반 가톨릭 감정이 그녀와 그녀의 주변 사람에게도 공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왕비인 캐서린조차도 가톨릭교도라는 이유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을 정도였기에 요크 공작의 아내였던 메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데나의 마리아

요크 공작 부인 메리


어쨌든 메리는 남편이 영국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그녀도 영국의 왕비가 됩니다만 당시 잉글랜드 내에서 제임스 2세에 대한 반발은 극심했었습니다. 특히 메리가 아들이자 후에 "올드 프리텐더"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낳으면서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기 전에는 비록 제임스 2세와 메리가 가톨릭에 호의적이긴했지만 제임스 2세의 후계자로 확고한 신교도였으며 신교도 남편이 있었던 오라녜 공작부인 메리가 왕위계승자였습니다. 하지만 메리 왕비가 아들을 낳게 되면서 왕위계승자가 바뀌게 되자 갈등의 상황은 폭발했으며 결국 잉글랜드 의회에서는 오라녜공 부부에게 잉글랜드로 와달라고 도움을 청했고 야심 가득했던 오라녜공 빌렘은 군대를 이끌고 런던으로 갑니다. 런던 앞바다에 가득한 네덜란드 함선을 보고서 의회측 귀족들은 기뻐했으며, 국왕측 귀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아들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와 함께 있는 메리 왕비


이미 내전을 경험했었던 제임스 2세는 만약 자신이 계속 잉글랜드에 머물면 내전이 일어날것이라 여겼기에 가족들과 함께 사촌인 루이 14세가 있는 프랑스로 망명합니다. 그리고 메리 역시 아들과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갔었죠. 메리는 망명중에 딸인 루이사 마리아 테레사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생 제르맹에서 망명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녀는 아들이 미성년일때 남편이 사망하자 아들이 성년이 될때까지 "섭정"지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이 성인이 된후 수도원으로 은퇴했으며 이곳에서 조용한 삶을 살았습니다만 아들인 올드 프리텐더가 프랑스에서 추방당하고 딸인 루이사 마리아 테레사가 천연두로 사망한뒤  감정적으로 너무나 힘들어했었다고 합니다. 



여동생인 루이사 마리아 테레사와 함께 있는 올드 프리텐더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