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01) 헤센-다름슈타트의 마리 : 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다섯번째)

엘아라 2019. 3.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01) 헤센-다름슈타트의 마리 : 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다섯번째)




헤센-다름슈타트의 마리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

Maria Alexandrovna (Мария Александровна), 

Princess Marie of Hesse and by Rhine 

Princess Maximiliane Wilhelmine Auguste Sophie Marie of Hesse and by Rhine

(8 August 1824 – 3 June 1880)

1860년대



니콜라이 1세가 죽었을 당시 러시아는 크림 전쟁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제위를 물려받은 알렉산드르 2세는 결국 평화협정을 체결해야만했다고 합니다. 이런 대외적인 문제에도 알렉산드르 2세의 대관식을 차질없이 진행됩니다. 사실 도리어 이런 불리한 상황을 화려한 볼거리인 대관식을 통해서 대중의 눈을 돌릴수 있는 효과도 있는 것이었죠. 그리고 1856년 9월 7일(구력 8월 26일) 모스크바에서 알렉산드르 2세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황제와 황후로 대관하게 됩니다.

알렉산드르 2세의 대관식



겨우 30살에 황후가 된 마리야는 여전히 늘 하던대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에는 아이를 낳는 것도 포함되어있었죠. 1857년에는 다섯째 아들인 세르게이를 낳았고 1860년에는 여섯째 아들이자 막내였던 파벨을 낳습니다. 18살때부터 36살때까지 여덟아이를 낳은 마리야는 사실 아이들을 낳을 수록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다섯째아들인 세르게이를 낳은뒤 그녀는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졌으며 이런 건강상황은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막내아들을 낳은 뒤에는 더욱더 약해졌기에 많은 일을 힘들어하게 됩니다.

파벨이 태어난 몇달뒤 마리야의 시어머니였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태후가 사망하게 됩니다. 러시아에서는 황태후가 황후보다 지위가 높았으며 황태후가 가진 지위는 황태후가 죽을때가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이때문에 마리야는 시어머니가 죽은뒤 시어머니가 하던 많은 일들을 물려받게 됩니다. 적십자사업을 비롯한 많은 자선사업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 스스로 여성 교육에 관심이 많았기에 여성 교육 사업을 더해서 더 많은 일들을 하죠. 

딸 마리야 니콜라에브나와 두 며느리들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와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와 함께 있는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1853년



마리야는 매우 엄격한 어머니였으며 아이들의 교육에 너무나 신경을 썼었다고 합니다. 특히 장남이자 지적이며 매력적이고 심지어 연약한것까지 그녀를 닮았다고 알려져있던 장남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을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니콜라이 대공은 매우 교육을 잘 받았으며 부모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던 아들로 자라나게 되죠. 

러시아 황후가 되었고 시어머니마저 사망한 뒤에는 마리야는 좀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있게 됩니다. 그녀는 궁정의 여러가지 일상인 파티나 모임등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건강도 나빴기 때문에 점차 의무로 참석해야하는 공식 행사 외에는 점차 모임을 줄여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인 알렉산드르 2세는 이런 모임등과 연회와 발레공연등을 여전히 즐겁게 즐기게 되죠. 게다가 마리야는 좀더 종교적인 인물로 바뀌어갔고 그녀는 이런 유흥거리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마리야는 황태자비시절보다 훨씬 더 인기없는 인물이 되어갔죠. 게다가 그녀의 건강은 그녀가 러시아에 오래 머물지도 못하게 했으며 이런 상황은 아마도 궁정 사람들의 기억에서 황후의 존재가 좀더 멀어지게 만들었을 듯합니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