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95) 올가 니콜라예브나 : 니콜라이 1세의 딸(세번째)

엘아라 2019. 2.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95) 올가 니콜라예브나 : 니콜라이 1세의 딸(세번째)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뷔르템베르크의 왕비

Grand Duchess Olga Nikolaevna of Russia 

(11 September 1822 – 30 October 1892) 



올가는 뷔르템베르크에서 매우 활발한 사회활동을 진행합니다. 이것은 당시 많은 자녀 없는 왕족 여성들이 삶의 의미를 다른곳에서 찾기 위해 하던 일들이었으며 특히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벗어나 위안과 보람을 얻을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올가는 여성 교육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녀는 어린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었죠. 또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하고 장애를 가지게 된 군인들에 대한 관심 역시 많았습니다. 그녀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요양원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또 아동병원 역시 설립했었죠. 이런 사회사업은 올가가 남편이자 국왕인 카를 1세보다 더 뷔르템베르크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도록 만들었습니다. 



카를 1세와 올가 왕비


또 올가는 농업에도 관심이 많아서 자신의 영지에 농업 상황을 특별히 감독할만한 사람을 보내기도 했었으며 늘 자세한 보고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유럽에 위치해있던 러시아 제국의 영지중 하나였던 올가의 영지는 제국내에서도 손꼽히게 발전한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올가는 자연과학과 암석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녀의 암석 콜렉션은 오래도록 공개되어 있던 것중 하나였습니다. 재미난 것은 올가의 이름이 오래도록 오스트레일리아 지방의 한 산에 붙여져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인 카타추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올가 산이 바로 그것으로, 복잡한 연결고리를 통해서 이 산이 처음 발견되었을때 올가의 이름을 따서 올가 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선사업을 많이 했으며 국민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더 올가였지만 남편인 카를 1세와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그의 동성연애에 대한 스캔들 때문에 매우 힘들어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국왕과의 관계를 밝히겠다고 협박하는 사람들마저 있었으며 이 문제에 대해서 올가가 수습해야했기에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빈터할터가 그린 올가 왕비


하지만 올가와 카를 1세는 결혼생활을 불행했지만 둘은 아이를 키우면서 가정적으로는 행복감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비록 올가는 아이를 낳을수 없었지만,1863년 올가의 조카였던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이 둘에게 맡겨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은 올가의 남동생인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딸로 그녀는 매우 거친 성격과 폭력적 성향을 보여서 궁정에서 감당할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콘스탄틴 대공부부는 스캔들을 피하기 위해서 딸을 멀리 뷔르템베르크 왕국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늘 조카들인 올가와 베라를 아꼈던 올가 왕비는 당연히 베라를 받아들였습니다. 베라의 증세는 사실 "시드넘 무도병"으로 추정될수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이런 상황은 베라에게 더욱더 우울한 일이었을 것이며, 뷔르템베르크에 온 초기 베라는 더 성격이 거칠게 변했었습니다. 하지만 올가와 카를 1세는 이 조카에 대해서 매우 인내심을 가지고 자상하게 돌보게 됩니다. 올가는 고모부를 발로 차기까지 햇었지만 카를은 절대 화를 내지 않았으며 늘 베라와 함께 산책을 하는등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올가 역시 끈기있게 베라를 기다려줬다고 합니다. 올가는 물론 카를 1세 역시 자신이 부모가 될수 없다고 여기다가 베라를 키우게 되었기에 아이에 대해서 매우 애정을 가지고 돌봤었다고 합니다. 결국 둘의 애정으로 인해서 베라는 둘을 부모처럼받아들였고 베라의 상태가 호전되자 올가와 카를 1세는 베라를 아예 양딸처럼 키우게 됩니다. 베라가 결혼할 나이에 이르게 되자 둘은 베라가 결혼해서 뷔르템베르크를 떠나야할것이 걱정이 되었고 아예 뷔르템베르크 왕가 사람과 결혼시켜서 베라를 뷔르템베르크에 남게 하기까지 했습니다.



베라 여대공과 함께 있는 카를 1세와 올가 왕비



올가의 남편인 카를 1세는 1891년 사망했고, 왕위는 육촌이었던 빌헬름 2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아마 과부로 올가는 조용히 살았을 것입니다만 올가 역시 남편이 죽은 다음해인 1892년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