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있는글들/월요일 : 정부들

정부들과 그 후손들...(186) 루이즈 드 케루알 : 찰스 2세의 정부(첫번째)

엘아라 2018. 7. 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몰 데이비스의 딸인 메리 듀더는 자료가 별로 없어서 그냥 루이즈 드 케루얄을 하기로 했습니다.

=-=

ㅠ.ㅠ 프랑스 이름이 또 ..흑흑흑


정부들과 그 후손들...(186) 루이즈 드 케루알: 찰스 2세의 정부(첫번째)



루이즈 드 케루알

포츠머스 공작부인(여공작)

Louise Renée de Penancoët de Kérouaille, 

Duchess of Portsmouth 

(September 1649 – 14 November 1734)


프랑스 귀족출신으로 찰스 2세의 정부가 되었다고 알려진 루이즈 드 케루알은 1649년 케루얄의 영주인 기욤 드 Penancoët 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케루알 가문은 브르타뉴 지방의 귀족가문이었으며 14세기 케루알의 상속녀와 결혼하면서 이 가문은 이 성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루이즈는 헨리에타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후에 7대 펌브로크 백작과 결혼하는데 이것은 루이즈가 찰스 2세의 정부로 자리를 잡으면서 여동생의 혼담이 성립된듯합니다.




케루알 저택

루이즈가 태어난 저택


루이즈는 어린시절 찰스 2세의 여동생이자 오를레앙 공작부인인 앙리에트 안의 궁정으로 갔으며 이곳에서 공작부인의 시녀로 일하게 됩니다. 생시몽에 따르면 루이즈의 가족들은 그녀가 루이 14세의 정부가 되길 바래서 그녀를 보낸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찰스 2세는 여동생인 미네트(앙리에트 안)을 예뻐했고 이때문에  1670년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의 비밀조약을 체결하러 앙리에트 안이 도버로 와서 오빠를 만났고 이때 루이즈 역시 앙리에트를 따라오게 됩니다. 아마도 찰스 2세는 이때 루이즈를 만났을 것이고 그녀에게 마음이 갔었던듯합니다. 찰스 2세는 루이즈에게 아내인 캐서린의 시녀로 임명했고 이것은 루이즈를 곧 그의 정부로 만들겠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오를레앙 공작부인

앙리에트 안


루이즈는 국왕의 정식 정부가 되었지만 대놓고 왕비를 무시했던 레이디 캐슬마인과는 달리 왕비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고분고분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캐서린 왕비와 루이즈의 관계는 좀더 부드러웠었다고 합니다. 루이즈는 어린아이처럼 매우 사랑스러운 외모였습니다만 매우 똑똑하고 의지가 강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찰스 2세를 강하게 사로잡을수 있었고 그의 애정을 유지했었습니다.



찰스 2세


루이즈가 국왕의 정부가 되면서 프랑스측에서는 그녀에게 호의적으로 접근합니다.루이 14세는 루이즈가 잉글랜드에서 찰스 2세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프랑스측에 유리한 행동을 하길 바랬으며 이 때문에 루이즈에게 많은 선물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잉글랜드 측에서는 도리어 못마땅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 루이 14세는 루이즈에게 값비싼 귀걸이를 선물했는데 이것은 잉글랜드의 어느 누구의 것보다도 비싼 것이었으며 심지어 왕비인 캐서린의 것보다도 비싼것이었기에 이것은 도리어 프랑스에 반발을 느끼고 있던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반발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런 그녀의 모습은 국왕의 다른 정부 특히 넬귄과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넬귄과 루이즈 드 케루알은 모든 면에서 서로 비교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넬 귄은 낮은 신분에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수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던 반면 루이즈 드 케루알은 귀족출신으로 오를레앙 공작부인의 시녀였고 이후에 국왕의 정부로 찰스 2세를 만나기전에는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지 않았었습니다. 게다가 넬귄은 매우 재치있고 신랄하게 말하는 사람이었기에 더욱더 비교되었을듯합니다. 하지만 정부들은 서로 적당히 잘 지냈으며 만나서 카드놀이른 라는 사이가 되기도 햇었습니다. 



넬 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