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32) 포르투갈의 이사벨 : 주앙 1세의 손녀 (두번째)

엘아라 2018. 2.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포르투갈의 인판타들...(32) 포르투갈의 이사벨 : 주앙 1세의 손녀 (두번째)




포르투갈의 이사벨

카스티야의 왕비

Isabella of Portugal 

(Isabel in Portuguese and Spanish) 

(1428 – 15 August 1496)


19살의 이사벨이 카스티야의 왕비가 되었을때 카스티야 왕가는 매우 복잡한 상황이었습니다. 후안 2세는 어린시절 숙부와 사촌들에게 휘둘렸으며, 이들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국왕이 이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원치 않았었죠. 후안 2세의 사촌들을 "아라곤의 인판테들"이라고 불렀는데 후안 2세의 숙부였던 페르난도가 아라곤의 국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아라곤의 인판테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정점에는 후안 2세의 친구이자 총신이었던 트루히요 공작이었던 알바로 데 루나가 있었습니다. 이 둘의 세력 다툼에서 결국 승리한쪽은 알바로 데 루나였습니다. 이사벨이 후안 2세와 결혼했을때 알바로 데 루나는 후안 2세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신하로 카스티야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중 한명이었습니다.



알바로 데 루나

트루히요 공작


결혼후, 이사벨은 알바로 데 루나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이 알바로 데 루나의 허수아비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을것입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남편이 루나에게 의존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아마도 국왕으로 스스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길 바랬을 듯합니다. 게다가 알바로 데 루나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은 이사벨 뿐만 이니었었죠.알바로 데 루나의 권력은 너무나 비대해졌으며 그가 정권을 장악하고 자신의 뜻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서 점차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었습니다.


이사벨은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알바로 데 루나를 멀리하라고 말했습니다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점차 알바로 데 루나와 이사벨은 사이가 멀어졌으며 둘은 서로를 경계하는 사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1451년 이사벨은 첫아이이자 딸인 이사벨을 낳습니다만, 아이를 낳고 매우 회복이 더디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궁정에서는 소문이 돌았는데 알바로 데 루나가 왕비를 독살하려 했다가 실패했기에 왕비의 건강이 나쁘다는 것이었죠. 사실 이전에 후안 2세의 첫번째 아내인 마리아가 죽었을때도 알바로 데 루나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었는데 그것온 마리아가 "아라곤의 인판테들"의 누나였기에 그런 소문이 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사벨이 지속적으로 남편에게 알바로 데 루나를 멀리하라고 했었기에 그랬을듯합니다.



이사벨


결국 1453년 이사벨은 뜻을 이뤄서 알바로 데 루나는 실각하고 처형당하게 됩니다. 그가 죽은뒤 이사벨은 후안 2세의 아들인 알폰소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후안 2세는 막내아들이 태어나고 1년을 더 살지 못하고 1454년 7월 사망합니다.


남편이 죽고 의붓아들인 엔리케가 즉위한 뒤 이사벨은 어린 두 아이들과 함께 알레발로 성으로 보내집니다. 후안 2세는 아들에게 새어머니인 이사벨과 두 이복동생들에게 잘 대해주라고 했지만, 엔리케 4세는 경제적 지원을 많이 해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알레발로 성으로 간뒤 이사벨은 우울증이 심해지게 됩니다. 사실 이사벨은 첫아이를 낳은뒤 산후우울증이 있었는데 남편이 죽고 알레발로 성으로 간뒤에 우울증이 점차 심해지게 된것이었죠. 게다가 엔리케 4세에게 딸인 후아나가 태어난뒤 그녀의 두 아이들은 강제로 엔리케 4세의 궁정으로 가야했으며 이사벨은 아이들조차 없이 홀로 남겨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이사벨의 상태는 더욱더 나빠졌는데 특히 그녀는 자신의 뜻으로 처형되었던 알바로 데 루나의 유령을 보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소리치거나 혼잣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점차 상태는 나빠져서 주변 사람들은 물론 그녀 자신이 누구인지마저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두 자녀와 함께 있는 이사벨 왕비

후대의 그림


아마도 이사벨은 자신의 아들이 죽었고 딸이 왕위계승자로 내전에 참여하고 결국 고향인 포르투갈과 왕위계승전쟁까지 치뤄야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동안 이사벨은 홀로 있었죠. 1496년 어머니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은 결국 어머니를 만나러 갑니다만, 이사벨 왕비는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사벨은 죽은뒤 남편 후안 2세와 아들인 알폰소 곁에 묻혔습니다.



이사벨 왕비



이사벨은 후안 2세와의 사이에서 두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첫째는 딸인 이사벨로 바로 카스티야와 레온의 여왕이자 아라곤과 시칠리아의 국왕이었던 페르난도와 결혼해서 "가톨릭 공동군주'라는 칭호를 들었으며 결국 두 왕국의 결합으로 "에스파냐"를 만들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둘째는 아들인 알폰소로 형인 엔리케 4세에 반기를 든 귀족들이 추대한 왕위계승자로 죽기 직전까지 엔리케 4세의 후계자였습니다. 그가 죽은뒤 누나인 이사벨이 그의 계승권리를 물려받아서 결국 카스티야의 여왕이 된것입니다.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

이사벨 왕비의 딸

가톨릭 공동군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