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34) 포르투갈의 후아나 : 아폰수 5세의 딸

엘아라 2018. 2.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이제 좀 익숙한 시대에 가까이 오기 시작합니다.

마누엘 1세때만 되면 익숙한 시대로 접어들더라구요 -0-;;;;;

더불어 초상화도 많고 말입니다. ㅎㅎㅎ


포르투갈의 인판타들...(34) 포르투갈의 후아나 : 아폰수 5세의 딸




포르투갈의 후아나

Blessed Joan of Portugal 

(6 February 1452 – 12 May 1490)

Santa Joana Princesa,)


후에 가톨릭 성녀로 추앙받게 되는 후아나는 1452년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 5세와 그의 부인이자 사촌이었던 인판타 이사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후아나의 위로는 오빠였던 주앙이 있었지만 태어난 직후 사망했으며 이때문에 후아나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뒤를 이을 추정왕위계승자로 선포되었었죠. 1455년 남동생인 주앙(후에 주앙 2세)가 태어나기 전까지 후아나는 아버지의 왕위계승자였기에 보통 프린세자 후아나 (Princesa Joana)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동생이 태어난 뒤에도 후아나는 계속 같은 이름으로 불렸는데 아마도 모두들 그 이름에 익숙해서였을 듯합니다.



아폰수 5세


후아나는 어린시절부터 종교에 귀의해서 수녀가 되길 바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동생인 주앙의 뒤를 이은 제 2왕위계승자였으며, 아폰수 5세는 1455년 아내가 죽은뒤 새로 결혼하지 않았기에 다른 자녀들이 없었으며 중요한 왕위계승자였던 후아나가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궁정에 있는 동안 후아나는 정치적 역할도 했는데 1471년 아폰수가 탕헤르로 원정을 떠났을때, 후아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포르투갈의 섭정으로 일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후아나의 소원은 동생인 주앙이 결혼해서 아들 아폰수를 얻으면서 이룰수 있게 됩니다. 1475년 조카인 아폰수가 태어나자 후아나는 자신의 소원대로 도미니크 수도회로 가서 서원을 했었으며 수녀원에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정치적 문제는 후아나를 수녀원에만 머물수 있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후아나는 수녀원과 궁정을 오가게 되는데 이런 그녀에 대해서 정략결혼을 위한 혼담이 오가게 되죠.



수녀 모습의 후아나


후아나에게 왔던 혼담 중에는 그녀보다 18살 어린 프랑스의 샤를 8세와의 혼담이 있었습니다. 물론 후아나는 이 혼담을 거절했었죠. 하지만 1485년의 혼담은 좀더 실현 가능성이 있는 혼담이었습니다. 바로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3세가 그녀와의 혼담을 진행한것이었습니다. 리처드 3세는 자신과 후아나가 결혼하고 조카였던 요크의 엘리자베스를 후아나의 사촌이자 베자와 비제우의 공작이었던 마누엘에게 시집보내려는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헨리 튜더가 잉글랜드로 왔고, 보스워스 전투에서 리처드가 죽음을 당하면서 이뤄지지 못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후아나는 꿈에서 이 일에 대한 계시를 이미 봤었다고 합니다.


후아나는 평생동안 동생인 주앙 2세를 정치적으로 후원하고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며 동생에게 도움이 되려했습니다. 후아나는 1490년 사망했으며 예수회의 수도원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17세기 후아나는 시복되었습니다. 시성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포르투갈에서는 성녀로 추앙받게 됩니다.


동생인 주앙 2세와 함께 있는 후아나


18세기초가 되면서 포르투갈 귀족들이나 성직자들은 이 공주에 대한 삶을 다시 조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동안 후아나의 삶에 대한 종교적 그림들이 그려졌으며, 종교기관,귀족들 그리고 포르투갈 왕가에서조차도 후아나의 삶에 대한 그림을 주문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아기 예수와 함께 있는 후아나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