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새해특집]황제의 딸, 여제의 며느리 그리고 "코부르크 부인" : 러시아의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8)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집

엘아라 2018. 1.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글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음냐...에휴..ㅠ.ㅠ

사람이 점점 게을러지는것을 느낍니다..반성 많이 해야겠습니다..흑


급하게 쓰니 글이 또 산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흑


[새해특집]황제의 딸, 여제의 며느리 그리고 "코부르크 부인" : 러시아의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8)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집


마리야는 힘든 삶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인 앨프러드와의 사이가 점점 멀어져갔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앨프러드의 술때문이었다. 해군들은 원래 술을 많이 마셨지만 앨프러드는 심각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고 이것은 곧 문제가 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마리야는 남들에게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의 자존심에 남편이 술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여왕의 며느리중 제일 독립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했던 마리야는 남편이 술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남들이 아는 것조차 싫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의 문제를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해서 마음을 비웠을 것이다. 그리고 애피는 바다에 자주 나가있었기에 아마도 조금만 자신이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마리야가 앨프러드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버틸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했고 아이들을 매우 독립적으로 키웠다. 하지만 마리야의 아들인 영애피는 아버지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령을 물려받기로 되어있었기에 그 역시 공작령의 후게자로 독일에서 키워졌다. 이때문에 마리야는 아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신 자신 곁에 남은 네 딸들의 교육을 책임지면서 아이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행사하게 된다. 그녀의 남편인 앨프러드는 아이들 교육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었다. 아마 마리야가 계속 영국에 살았다면 간섭하기 좋아했던 빅토리아 여왕이 손자 손녀들의 교육에 관여했을 것이지만, 마리야는 남편을 따라 몰타에서 살았고 후에 코부르크로 옮겨가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아이들을 교육시킬수 있었다. 덕분에 마리야의 딸들은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들중 가장 독립적이며 가장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성장하게 된다.



마리야의 네 딸들

왼쪽에서 베이비 비, 더키, 산드라, 미시



마리야와 앨프러드는 몰타에서 사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앨프러드는 해군이었기에 해군 기지가 있는 몰타를 사랑했고 마리야는 영국 사교계와 시어머니 동서 시누이등등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수 있는 몰타를 좋아했던 것이다. 아마 이때문에 마리야는 남편이 영국 여왕의 아들로 사는 것보다 독일의 공작령의 군주로 사는 것을 더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언젠가 살게 될 코부르크에 집을 짓게 된다. 코부르크에서 지은 집은 고향인 러시아 스타일로 지었으며 아마도 마리야는 이곳이 이제 진정한 자신의 집이 되리라 믿었을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과 장녀인 빅키와 빅키의 딸(빅토리아 아니면 조피인듯),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그리고 마리야와 마리야의 세딸들



1887년 앨프러드와 그 가족들은 코부르크로 이주했다. 앨프러드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후계자였기에 가족들 역시 이제 코부르크로 간 것이었다. 마리야에게는 이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여왕의 간섭이 없었으며 영국 사교계와는 전혀 다른 독일 사교계에서 후계자의 아내로 중심인물로 살아갈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전에 코부르크에서 지은 자신의 집을 진정한 자신의 집으로 여겼을 것이다. 앨프러드는 계속 영국 해군으로 남았기에 계속 여러곳을 다녔지만, 마리야는 이제 남편을 따라 가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코부르크에서 지내게 된다. 그녀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영국 해군은 지브롤터만 지나면 다 미혼..이라는 농담도 있습니다. -0-;;;;; 그러고 보면 결혼전에는 바람둥이였지만 결혼후에는 아내에게 충실했던 바텐베르크의 루이스가 떠오르는군요. 그러니 현모양처인 헤센의 빅토리아를 얻을수 있었겠죠 -0-;;;)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었다. 이제 마리야에게는 아이들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으며 알콜때문에 심각한 문제까지 있던 남편은 그저 견뎌야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앨프러드 역시 아내에게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아내는 영국에 적응하는 것을 실패했다. 가부장적 시대였던 당시에 이것은 마리야의 책임으로 비춰졌을 것이며 역시나 부부간의 불화의 요인중 하나였을 것이다. 결국 부부는 자주 떨어져 지냈으며 마지못해 함께 해야했지만 적어도 둘은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했고 아마도 부부는 아이들을 위해 서로를 견뎌냈을 것이다.



앨프러드


이제 마리야도 점점 나이가 들어갔으며 마리야의 아이들도 점차 성장해갔다. 마리야의 딸들은 어머니의 절대적 영향력아래 있었으며 이런 딸들의 인생에 마리야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