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뭐랄까 잘못된 결혼이었던듯해요.ㅠ.ㅠ
남편이 원하던 이상형의 왕자님이 아니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죠.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 황제의 딸이라는 것도 문제였구요...ㅠ.ㅠ
[새해특집]황제의 딸, 여제의 며느리 그리고 "코부르크 부인" :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6) 영국에서
영국에 막 왔을때 마리야나 영국 사람들이나 모두 서로의 장점을 찾으려 했었다. 마리야는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꿈꿨으며 여왕은 자신의 새 며느리에 대해서 처음에는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다. 또 영국 사람들 역시 여대공의 직설적 성격을 꾸밈없는 성격이라고 호의적으로 평가했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서서히 바뀌었으며 결국 마리야는 영국 사교계를 싫어하게 되고, 영국쪽 사람들 역시 마리야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게 된다. 사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마리야의 남편인 앨프러드때문이었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앨프러드는 아내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그는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했는지 전혀 몰랐는데 기본적으로 그는 마리야가 원하던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앨프러드는 아내에게 매우 서툰 사람으로 당대 사람들이 봤을때도 그가 아내에게 하는 행동은 이해받기 힘들었다. 이것은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왕자님을 꿈꿨던 마리야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마리야가 문제가 생겼을때 그는 아내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으며 문제를 그저 바다로 도망가면서 회피했고 이것은 마리야가 어려움에 직명했을때 남편의 도움을 못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남편이 미우니까 시댁까지 나쁘게 보였고 이것은 마리야가 영국을 싫어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었을 것이다.
에든버러 공작 앨프러드 "애피"
읽어본 이야기들에서 해군 남편을 둔 왕족 여성들은 남편을 "이해"해야한다고 이야기하더라구요.
애피의 조카인 헤센의 빅토리아 역시 해군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남편이 늘 자신 곁에 있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했다라고 나오더라구요. (그래도 빅토리아의 남편은 빅토리아를 이해하려 했다고는 했는데 애피는..--;;)
뭐랄까 마리야는 해군이 아니라 외교관이랑 결혼했으면 좋았을 건데 말입니다.=-=
게다가 영국과 러시아의 복잡한 정치 관계 역시 마리야가 영국 사람들에게 나쁜 평가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과 러시아는 대외적으로 경쟁관게였으며 이런 상황은 영국이 러시아에 대해서 승리하거나 러시아가 영국에 대해서 승리할때 마리야의 입장이 미묘해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마리야의 행동에 대해서 예의주시했었는데, 마리야의 행동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이를테면 한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에 마리야가 기뻐했을때 빅토리아 여왕은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바탕으로 하는 승리"라고 혹평하면서 그에 대해서 기뻐하는 마리야를 나쁘게 평가하기도 했었다.
또한 마리야의 지위나 보석등도 문제가 된다. 마리야는 황제의 딸로 HIH(Her Imperial Highness)를 썼으며 이호칭을 계속 쓰려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HRH(His Royal Highness)를 썼으며 가끔 HIH가 HRH보다 높은 호칭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것은 결혼으로 이제 에든버러 공작부인이 된 마리야에게 자신의 여대공 지위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비춰질수 있었으며 이것은 그녀가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연결이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남편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지위로 쓸수 있는 칭호인 HGDH를 쓰지 않고 훨씬 신분이 낮은 칭호라고 여겨지던 남편의 칭호인 HSH를 썼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빅토리아는 현모양처라는 소리를 듣는...-0-;;;;;)또 마리야의 아버지는 딸에게 엄청난 혼수를 해줬으며 마리야는 러시아 황제의 딸로 당연히 이런 호사스러움에 익숙해져있었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이런 보석등을 했을때 탄사를 받았지만 영국에서는 질투심 어린 시선을 견뎌야했다. 이것은 아마 마리야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왕위계승자의 아내인 동서 알렉산드라와 비교 대상이 되는 것도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알렉산드라보다 지위도 더 높았고(알렉산드라는 결혼했을때 단지 추정왕위계승자의 딸이었을 뿐입니다.) 교육도 더 잘 받았지만 영국 사교계는 마리야보다 알렉산드라를 더 호의적으로 대했으며 이것은 앞의 문제들과 겹쳐서 마리야에게 더 힘든 상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과 베아트리스 공주 그리고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베아트리스보다 마리야가 훨씬 예쁘네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어머니 빅토리아 여왕과의 사이 역시 점차 벌어지게 된다. 마리야의 아버지인 황제는 결혼초인 1874년 영국으로 와서 딸과 사위 그리고 사돈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사돈인 빅토리아 여왕에게 딸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 여왕은 이때에 대해서 황제가 눈물을 보이면서 딸을 걱정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의 걱정에 공감을 했었다. 하지만 여왕과 마리야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달랐으며 이것은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여왕의 러시아에 대한 악감정과 추위에 대한 다른 의견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강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모습모두 마리야와 맞지 않았다. 이를테면 마리야는 결혼 직후 임신했는데 임신한 여성으로 기운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빅토리아 여왕은 이런 마리야의 모습을 보고 화를 내면서 난로에 물을 부어 불을 끄면서 이런 따뜻한 생활 습관이 그녀의 나태함을 만든다고 꾸짖었다고 한다. 결국 여왕의 이런 간섭은 마리야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며 남편인 앨프러드는 당연히 중간에서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마리야는 점차 더 여왕의 간섭을 싫어하게 되었으며, 여왕 역시 이렇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며느리에 대해서 더욱더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남편이 있다고 해서 여왕의 간섭을 막아줄수는 없었을테지만 적어도 위안이 될수는 있을텐데 애피는 아내에게 그런 역할마저 안했던 인물이라...)
1874년 딸을 만나러 온 알렉산드르 2세와 함께
왼쪽은 오빠인 알렉세이 대공
결국 마리야는 자신이 원하던 왕자님이 자신이 바라던 왕자님이 아닌것을 깨달아야했으며 멀고먼 나라에서 행복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멀고먼 나라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