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아는 내용이니 책이 술술 읽히는군요 -0-;;;
[새해특집]황제의 딸, 여제의 며느리 그리고 "코부르크 부인" :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3) 어린시절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러시아의 화려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핀란드에서 살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대제가 세운 러시아의 새로운 수도였으며 황실 가족들이 거주하는 '겨울궁전(현재 에르마타주 박물과)"이 있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 이 궁전은 매우 화려했으며 강력한 러시아 황제의 궁전으로써의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핀란드는 러시아 황실 가족들이 사랑한 지역이었다. 러시아가 핀란드를 완전히 장악한것은 알렉산드르 1세때였으며 이후 러시아 황제들은 '핀란드의 대공'으로 핀란드를 통치했다. 황실 가족들은 여름철에 핀란드로 자주 가서 시간을 보냈고 마리야 역시 가족들과 함께 핀란드로 가서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 산책을 하고 말을 타는등의 즐거운 생활을 보냈었다.
어린시절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2살이 되기전인 1855년 그녀의 할아버지인 니콜라이 1세가 사망했다. 그리고 아버지인 알렉산드르가 황제 알렉산드르 2세로 즉위했고 어머니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가 되었다. 마리야의 부모는 황제와 황후가 된 뒤에도 여전히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둘다 아이들을 매우 사랑했었다. 알렉산드르 2세 부부는 황제와 황후가 된 뒤에도 두명의 자녀를 더 얻었는데 아들이었던 세르게이와 파벨이었다. 결국 마리야는 일곱 형제들중 유일한 딸이었으며 이것은 그녀의 부모는 물론 러시아 궁정에서도 그녀가 매우 사랑받는 아이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는 딸인 마리야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어머니와 딸이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기도 했지만, 아마도 여섯 아들들보다는 같은 "여성"이었던 딸 마리야에게 어머니인 황후가 심리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졌으리라 추정된다. 또 당대에는 형제들은 형제들끼리, 자매들은 자매들끼리 교육받는 것이 관례였는데 마리야의 경우 같이 교육받을 자매가 없었기에 어머니가 직접 챙겼을 가능성도 커보인다.
딸 마리야와 아들 세르게이와 함께 있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
마리야는 어머니와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매우 사랑받는 딸이었다. 많은 고명딸들을 둔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알렉산드르 2세 역시 고명딸인 마리야를 매우 예뻐했었다. 그는 어린 딸을 데리고 자주 서재에서 있었는데 딸들이 예뻐서 어쩔줄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금발에 푸른눈을 가진 통통한 아기시절부터 마리야는 아버지 무릎에서 놀았으며 이런 딸이 성장해가면서 황제는 여전히 딸을 예뻐했었다.
황제 부부와 마리야 그리고 마리야의 남동생(세르게이만 있는지 파벨도 같이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마리야는 남자 형제들 밖에 없었으며 따로 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오빠들과 남동생들에게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결국 마리야는 당대 공주들보다는 좀더 "톰보이"같이 성장하게 된다. 러시아 대공들로 황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간섭할수 없었던 오빠들과 남동생들 사이에 둘러쌓여져있었던 마리야 역시 이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리야는 매우 직선적으로 말하는 성격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성격은 좋을수도 나쁠수도 있는 성격이었다. 좋은 방향으로 보면 정직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지만 나쁘게 보면 무례하거나 예의없거나 오만하다고 비춰질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리야의 이런 성격은 불행히도 훗날 나쁜방향으로 비춰지게 되었다.
부모인 황제와 황후가 매우 예뻐하는 아이였으며 아마 오빠들이나 남동생들 역시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나 누나에 대해서 호의적인 감정을 내비췄을 것이기에 마리야는 러시아에서 매우 사랑받는 아이로 성장했다. 궁정에서 감히 여대공에 대해서 나쁘게 평가할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리야가 매우 고집센 인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러시아 궁정에서는 마리야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수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뭐든 다해줄 아버지는 바로 러시아의 최고 권력자였다. 이런 황제의 딸에게 감히 안된다고 말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여대공의 가정교사는 매우 걱정스러워했었다. 여대공의 가정교사는 마리야가 너무나 응석받이로 자라날것을 두려워했고 여대공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서 나쁜 성격이 굳어지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마리야는 좋게 보면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표현될수 있는 성격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나쁘게 보자면 고집이 매우 셌으며 남과 타협하려하지 않는 성격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 이런 성격은 그녀가 러시아를 떠나 다른 나라 특히 영국 같은 나라로 시집가면서 문제가 되었다.
오빠들과 남동생 아버지와 함께 있는 마리야
마리야는 금발머리에 푸른눈을 가진 예쁜 아이였으며 교육도 매우 잘 받았었다. 러시아어는 불론 영국인 보모로부터 영어를 배워서 모국어처럼 했으며, 독일어,프랑스어도 잘했었다. 당시 러시아궁정의 교양어는 프랑스어였으며 어머니가 독일 사람이었기에 독일어도 배웠던 것이다. 마리야의 가정교사는 매우 엄격하게 여대공의 교육을 관장했고 이때문에 마리야는 교육을 매우 잘 받았다고 알려지게 된다. 마리야가 10대시절 러시아를 방문했던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마리야를 보고서 자신이 만난 수많은 소녀들과 다를바 없었지만 소설은 그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었다.
어린시절 마리야는 매우 사랑받는 아이였으며 그녀의 부모 특히 아버지인 황제는 그녀에게 뭐든 해주려했다.이런 모습은 마리야가 러시아 궁정의 핵심 인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황제는 딸의 말을 다 들어줬고 이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마리야가 아버지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실제로 마크 트웨인은 이런 황제와 마리야를 보고서는 마리야가 "러시아를 통치하는 것같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마리야의 시녀장은 마리야가 궁정의 핵심에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정치가인 황제의 모습은 다른 것이며 아마도 이것은 어린 마리야에 대해서 너무나 과장되게 평가한 것일 것이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과대평가였던 간에 어린시절 마리야는 러시아황실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로 러시아 궁정의 핵심 인물이었던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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