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올해도 망할수도 있습니다만...그냥 마음을 비우고 써야겠습니다.
새벽에 허덕이면서 쓰는데 내일은 더 잘 써지리라 믿습니다.
(아 또 아이스크림 한통씩 먹어야하나.==)
[새해특집]황제의 딸, 여제의 며느리 그리고 "코부르크 부인" : 러시아의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2) 부모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1859년 10월 17일(구력 10월 5일) 러시아 황실 가족들의 거주지가 있던 짜르스코예 실로에서 당시 황태자였던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그의 아내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헤센의 마리)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여덞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큰딸인 알렉산드라는 어려서 사망했기에 마리야는 실질적으로 유일한 딸로 성장하게 된다.
알렉산드르 2세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
그리고 둘의 아이들인 마리야와 세르게이
마리야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1세와 그의 아내인 마리야 표도로브나(프로이센의 샤를로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때 유럽의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신붓감을 구했다. 그는 다양한 나라를 다녔고 수많은 신붓감들을 만났었죠. 외가인 프로이센 공주들도 만났고 오스트리아로 가서 오스트리아 여대공들도 만났었으며, 작센이나 바덴등에도 갔었다. 그리고 심지어 바다 건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만났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잘생긴 러시아의 황위계승자와 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영국 언론들은 그가 여왕의 남편이 될지 안될지에 주목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대공의 인연은 따로 있었다.
황태자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대공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유럽의 여러곳을 여행했던 황태자는 영국으로 가기전 헤센 대공령의 수도인 다름슈타트를 지나게 된다. 다름슈타트에는 황태자의 신붓감으로 고려된 여성이 없었기에 황태자 일행은 특별히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그저 헤센 대공의 초대에 의례적으로 참석한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황태자는 한 여성에게 반해버렸다. 바로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 2세의 막내딸이었던 마리였다. 마리를 만난 알렉산드르는 그녀에게 반해버렸고 아버지에게 자신이 마리에게 반해버렸음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헤센의 마리는 러시아 황실에서 신부감으로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헤센의 마리는 헤센의 대공이었던 루드비히 2세와 그의 아내이자 사촌이었던 바덴의 빌헬미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이때 마리의 나이는 겨우 14살로 일단 나이가 너무 어렸었다. 게다가 마리는 전 유럽 궁정이 다 아는 스캔들의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전 유럽 궁정에는 헤센 대공 부부의 아이들중 밑의 두 아이들인 알렉산더와 마리가 실은 대공의 아이들이 아니라 대공비의 시종무관의 아이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었다. 실제로 대공과 대공비는 위의 두 아들들이 태어난 뒤 함께 살지 않았었으며 대공비는 1809년 대공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뒤, 1820년대에 다시 아이들을 낳았고 이 1820년대에 낳은 아이들은 모두 대공의 아이들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비록 전 유럽 궁정이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아내의 부정을 인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계승권과 거리가 먼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들로 인정하는 편이 더 나았던 헤센의 대공은 아내의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아이들로 인정했고 헤센의 마리 역시 전 유럽 궁정에서 어떻게 쑥덕대건 간에 공식적으로는 헤센 대공의 딸이었다.
헤센의 마리
비록 나이도 어렸고, 치명적인 출생의 문제까지 있었지만, 마리는 알렉산더가 원하던 이상적 여성의 모습이었습니다. 나이보다 키크고 우아한 모습에 금발에 푸른눈에 자애로운 모습에 교육까지 잘 받았었죠. 황태자는 이런 마리에게 정말 반해버렸으며, 마리를 다시 만나러 가도 되겠냐고 황제의 허락을 구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황제가 거절하기 어려운 날에 그 편지가 도착하도록 지연시키기까지 했었다. 결국 황제는 아들의 청을 수락했었는데 특히 영국 언론이 황태자를 여왕의 남편감으로 이야기하면서 황제는 아들이 정말 영국 여왕과 결혼하려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아들에게 다름슈타트로 가보라고 했을 정도였다.
영국에서 돌아온 황태자는 다시 다름슈타트로 갔으며 마리와의 결혼 문제는 점차 더 구체적이 되어갔다 마리는 정교회로 개종하기 위한 교육을 받았고 1840년 4월 약혼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헤센 대공 가문 사람들
오른쪽 여성이 마리입니다.
사실 둘의 결혼에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리는 출생의 문제 뿐만 아니라 가문의 복잡한 문제도 있었다. 헤센 대공 가문은 러시아나 여러 독일 왕가와 통혼관계에 있었다. 이를테면 마리 아버지의 고모는 알렉산드르의 할아버지였던 파벨 1세의 첫번째 아내였다. 물론 파벨 1세의 첫번째 아내였던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알렉산드르는 파벨 1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손자였다. 또 마리 어머니의 고모는 황태자의 백부였던 알렉산드르 1세의 황후였던 엘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였다. 그런데 황태자의 어머니였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는 손윗동서였던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와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황태자의 어머니인 황후가 이 혼담에 적극적으로 반대했었다. 물론 알렉산드르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고 밝혔고, 결국 황제 부부는 아들의 신붓감을 만난뒤 그녀가 매우 얌전하고 순종적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난뒤에 결혼에 동의했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마리야 여대공의 할머니
마리는 16살 생일을 막 지낸후 결혼을 하기 위해 러시아로 갔다. 마리는 1840년 9월에 상트페레르부르크에 도착했으며 12월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라는 이름을 받은후 공식적 약혼 행사가 이뤄졌다. 그리고 다음해인 1841년 4월 러시아의 황태자인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개종해서 이제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로 불릴 헤센의 마리가 정식으로 결혼했다. 결혼식은 알렉산드르의 23번째 생일 전날이었으며 마리는 겨우 16살이었다.
알렉산드르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결혼
마리의 출생은 러시아 궁정에서도 쑥덕댈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며느리에 대해 뒷말이 나오는 것을 강하게 막았다. 그는 며느리의 출생에 대한 어떤 의견도 말하지 못하도록 명을 내려 모두가 침묵하게 만들었고,어린 황태자비는 적어도 출생에 대한 뒷말은 듣지 않아도 되었다.
마리는 황제가 원하던 이상적 며느리감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매우 순종적이었으며 황실에 황위계승자 걱정이 없게 수많은 아이들을 낳았으며 아이들의 교육에 전념했었다. 또 마리는 공식행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지위와 위치를 잘 알고 그 행사에 참석해야한다는 의무도 이해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르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매우 행복한 부부였다. 황태자는 아내를 사랑해서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늘 식사때 식탁에 올리게 하고 아내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지냈었다.
마리야의 부모
1870년대
알렉산드르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사이에서는 결혼 다음해부터 아이들이 태어났다. 첫 아이는 딸인 알렉산드라였고 둘째는 아들인 니콜라이였다. 그리고 뒤로 알렉산더, 블라디미르,알렉세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딸인 마리야가 태어났고 그 뒤로 세르게이와 파벨이 태어났다. 황태자 부부는 알렉세이를 낳기 전 장녀인 알렉산드라를 잃었다. 아이의 부모는 첫아이이자 사랑했던 딸을 잃은 충격으로 힘들어했는데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딸이 죽은 기일에 매년 울음을 참지 못했으며, 알렉산드르 역시 첫딸이 죽은 기일을 중요한 날로 여겼다고 한다. 첫번째 딸이 죽은뒤 태어난 딸인 마리야는 다시한번 부모의 사랑받는 아이가 된다. 특히 위로는 모두 오빠들이었고 밑으로 태어난 동생들 둘 역시 남동생들이었기에 마리야는 부모의 고명딸이 되었으며 매우 사랑받는 아이가 되었다. 특히 아버지 알렉산드르가 가장 사랑한 아이가 바로 마리야였다.
여섯 아이들과 함께 있는 알렉산드르 2세
오른팔로 안고 있는 아이가 딸인 마리야입니다.
왼쪽에서 마리야,알렉산드르 2세, 세르게이,블라디미르,알렉산드르(알렉산드르 3세),알렉세이, 니콜라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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