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41)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 표트르 대제의 딸(두번째)

엘아라 2017. 11. 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옐리자베타는 진짜 표트르 대제를 많이 닮았었나 보군요.

예쁜데 자길 닮을 딸이었으니 표트르 대제가 좋아했을만 하네요.

그리고 아버지처럼 쿠데타도 하고 말입니다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41)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 표트르 대제의 딸(두번째)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여제

Elizabeth Petrovna 

(Елизаве́та (Елисаве́та) Петро́вна

(29 December [O.S. 18 December] 1709 – 5 January 1762 [O.S. 25 December 1761]), 



표트르 대제는 아들이었던 알렉세이 페트로비치를 브라운슈바이크 가문의 출신 여성과 결혼시켰습니다. 표트르 대제의 며느리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사촌이자 신성로마제국 황후의 조카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때문에 표트르 대제 역시 딸들도 쉽게 결혼 시킬수 있다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죠.

(...--;;후대에 러시아 여대공들이 자부심때문에 외국에 시집가는 것을 그다지 맘에 안 들어가는 것과 전혀 다른....)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딸들을 프랑스 왕가로 시집보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한동안 유럽을 여행하면서 서구 문물을 배웠으며 이때 프랑스에 매료되었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이때문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을 프랑스 왕가의 계승자에게 시집보내고 싶어했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왕가에서는 옐리자베타의 어머니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등을 들어서 반대했으며 결국 이 혼담을 없던것으로 합니다.



표트르 대제가 사위 삼고 싶어했던 프랑스 왕족

루이 15세


딸들을 프랑스 왕가로 시집보내려던 시도를 접은뒤 표트르 대제는 딸들을 시집보낼 다른 가문을 찾게 됩니다. 바로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이었죠. 홀슈타인-고토로프의 카를 프리드리히는 옐리자베타의 언니인 안나와 결혼합니다. 그는 스웨덴 공주의 아들로 그의 외삼촌이 바로 스웨덴의 칼 12세였습니다. 카를 프리드리히는 칼 12세가 후계자가 없었기에 그의 어머니를 통해 스웨덴 왕위계승권리를 얻었으며 스웨덴의 왕위를 얻길 바랬지만 얻지 못했습니다. 이후 늘 덴마크에서 독립을 원했던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러시아와 동맹을 맺길 원했고 이에 러시아 황제의 딸과 결혼하길 바랫던 것입니다. 언니인 안나의 혼담이 정해진 뒤 옐리자베타 역시 혼담이 정해지게 됩니다. 옐리자베타의 상대는 역시나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 출신으로 카를 프리드리히의 사촌이었던 카를 아우구스트였습니다. 에틴 공의 장남이었던 카를 아우구스트와 옐리자베타의 결혼은 1725년 예정되었었는데 표트르 대제의 죽음으로 결혼은 잠시 미뤄졌으며 1727년 카를 아우구스트 마저 사망하면서 이 혼담은 결국 끝나게 되죠.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의 문장


하지만 이 혼담은 후에 옐리자베타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카를 아우구스트의 여동생인 요한나 엘리자베트는 후에 안할트-제브르스트 가문으로 시집갔는데, 옐리자베타는 이 요한나 옐리자베타의 딸을 자신의 후계자가 된 조카 표트르의 아내로 맞아들이게 됩니다. 그녀가 바로 예카테리나 2세였죠. 또 옐리자베타는 스웨덴 왕위계승 문제에도 개입하는데 그녀는 스웨덴의 왕위를 카를 아우구스트의 동생인 아돌프 프리드리히가 갖길 바랍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가장 가까운 계승권을 가진 조카 표트르가 러시아황제가 되었고 그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아돌프 프리드리히가 스웨덴 왕위를 잇기를 바래서였습니다만, 아돌프 프리드리히는 역시 그녀의 옛 약혼자의 남동생이기도 했었죠.



아돌프 프레드릭

스웨덴의 국왕

옐리자베타의 옛 약혼자의 동생


옐리자베타의 첫번째 약혼이 끝난뒤 옐리자베타에게는 더이상 혼담이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의 정치적 혼란때문이었죠. 1727년 옐리자베타는 겨우 열일곱살이었지만 첫번째 약혼자를 잃었고 어머니 에카테리나 1세마저 사망합니다. 그리고 조카인 표트르 2세가 즉위하죠. 물론 어린 표트르 2세는 매우 아름다웠던 고모 옐리자베타를 좋아했다고 합니다만 그는 어린 나이였으며 고모의 혼담에 신경쓸만한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조카인 표트르 2세마저 1730년 사망하고 황위가 사촌인 안나 이바노브나에게 돌아가면서 옐리자베타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됩니다. 안나 여제는 자신의 사촌을 경계했으며 이때문에 그녀와 외국 왕가와의 혼담을 주선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안나 여제의 눈치를 보던 귀족들 역시 감히 옐리자베타에게 청혼할 용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 옐리자베타는 자신의 계승권리와 재산때문에 평민과는 결혼할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결국 옐리자베타는 정식으로 결혼을 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