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38) 안나 페트로브나 : 표트르 대제의 딸 (첫번째)

엘아라 2017. 10. 1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안나군요

안나만 하고 나면 또 많이 써야하는 옐리자베타 여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음냐...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38) 안나 페트로브나 : 표트르 대제의 딸 (첫번째)




안나 페트로브나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부인

Grand Duchess Anna Petrovna of Russia

(Anna Petrovna Romanova)

 Анна Петровна

(27 January 1708,  – 4 March 1728,


안나 표트로브나는 1708년 표트르 대제와 그의 정부이자 후에 아내가 되는 예카테리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안나의 부모는 이때까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기에 안나는 태어날 당시 적자가 아니었습니다. 이후 안나의 부모는 정식으로 결혼했고 안나는 적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전 태어난 자녀들에 대해서는 신분이 좀 애매했는데 부모가 비록 정식 결혼했더라고 더라도 엄격하게 따지기 시작하면 결혼전 태어난 아이들은 사생아로 취급받기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안나나 그녀의 동생인 옐리자베타에 대해서 러시아에서 좀 낮춰보는 경향이 있었을 듯도 합니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는 딸들을 적자로 인정하면서 계승권 역시 인정했습니다.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1세 그리고 세딸들과 손자 표트르


표트르 대제는 서유럽과의 동맹을 중요시 여겼는데 이때문에 딸들도 서유럽쪽 왕가로 시집 보내길 바랬었습니다. 그래서 표트르 대제는 딸들에게 전통 러시아식 교육이 아닌 서유럽식 교육을 시켰으며 교육을 매우 잘 시켰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안나와 동생 엘리자베타는 읽고 쓰는 것은 물론 외국어와 춤 문학 예법등을 배웠습니다. 특히 안나는 언어에 소질이 있었고 러시아어는 물론이고 독일어,프랑스어, 이탈리아어,스웨덴어를 할줄 알았다고 합니다. 


안나는 어린시절부터 여동생인 옐리자베타와 달리 수줍음 많은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안나가 열네살이 되던해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이 러시아 궁정에 왔었는데 그는 부활절날 서로 입맞춤하던 풍습에 따라 안나에게 입맞춤을 했다고 합니다. 이 가벼운 입맞춤에도 안나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매우 수줍어했다고 합니다 반면 엘리자베타는 아주 자연스럽게 입맞춤을 했다고 합니다.


안나와 옐리자베타


안나는 검은 눈동자에 진한 머리색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동생인 옐리자베타처럼 아름답긴했지만, 아버지인 표트르 대제를 좀 더 많이 닮았었고 이때문에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여동생보다는 좀더 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옐리자베타는 화려한 외모에 대담한 성격이었던 반면 안나는 좀더 편안한 모습에 수줍음 많은 성격이었기에 옐리자베타를 먼저 보면 아름다움이 눈에 띄었고, 안나는 동생에 대비해서 좀더 점잖고 지적으로 보였을 듯합니다.


표트르 대제의 뜻에 따라 많은 서유럽 왕족들이 러시아를 방문합니다. 특히 러시아와의 동맹을 원하는 나라의 왕족들은 러시아로 왔는데 동맹을 위해서 표트르 대제의 딸이나 조카들과 결혼하기 위해서였죠. 사실 표트르 대제는 프랑스와의 동맹을 바라고 있었고 이때문에 딸을 프랑스 왕가로 시집보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표트르 대제는 당시 섭정이었던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루이 도를레앙에게 안나를 시집보내고 싶어했습니다. 루이 도를레앙은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의 아들이자 루이 14세의 외손자였는데 루이 도를레앙의 어머니가 루이 14세와 마담 드 몽테스팡의 딸로 결혼전 마드무아젤 드 블루아로 불렸던 프랑수아즈 마리였습니다. (....리젤로트가 싫어했던 며느리 -0-;;) 하지만 이 혼담은 성사되지 않았죠. 이후 안나의 남편이 될 남자가 러시아로 오게 됩니다. 



루이 도를레앙

오를레앙 공작, 루이 13세의 증손자, 루이 14세의 외손자


1721년 3월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이었던 카를 프리드리히가 러시아 궁정에 옵니다. 그가 온 이유는 당연 표트르 대제의 딸을 안내로 얻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가 표트르 대제의 딸과 결혼하려던 이유는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으로 덴마크와의 마찰을 해결하는데 러시아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였습니다.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은 덴마크 왕가의 분가중 하나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로프의 공작령을 상속받아 통치하던 가문이었습니다. 이후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들은 덴마크 국왕의 신하 지위를 벗어나길 원했고 이때문에 스웨덴등과 동맹을 맺었고 칼 10세 구스타프의 왕비이자 칼 12세의 할머니 역시 이가문 출신이기도 했습니다. 또 카를 프리드리히의 어머니는 칼 12세의 누나로 한때 스웨덴의 왕위계승자로 여겨지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을 꺽고 강자로 부상하고 있던 러시아와의 동맹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홀슈타인-고토로프의 카를 프리드리히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