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이베리아 반도로 시집가면 다 이리 복잡해지는겁니까.ㅠ.ㅠ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 포르투갈의 마팔다 : 산초 1세의 딸
인판타 마팔다
Infanta Mafalda of Portugal
(c. 1195 – May 1, 1256)
포르투갈의 마팔다는 포르투갈의 국왕 산초 1세와 그의 아내인 아라곤의 둘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팔다는 10대가 되기전 어머니를 잃었으며, 10대 중반 결혼하기전 아버지마저 잃었습니다. 마팔다의 아버지인 산초 1세는 당시 장녀였던 테레자가 집으로 돌아와 있었으며 다른 딸들 역시 미혼으로 남아있었기에, 자신이 죽은뒤 딸들의 장래를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딸들에게 영지를 부여해줘서 딸들이 아버지 없이도 살아갈수 있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마팔다의 오빠였던 아폰수 2세는 아버지의 이런 유지를 감췄는데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영지가 분리될것을 우려했기 때문일듯합니다. 마팔다는 다 자란후에야 이를 알게 됩니다.
마팔다의 아버지 산초 1세
마팔다는 20살 무렵이었던 1215년 카스티야의 국왕 엔리케 1세와 결혼합니다. 이때 엔리케의 나이는 10살로 이 결혼은 완전히 정치적인 것이었습니다. 결국 나이차 때문에 결혼은 완성되지 않았으며 결혼 다음해인 1216년 교황은 둘사이의 결혼을 무효화 시키게 됩니다. (중세시대 경우 미성년의 결혼은 무효가 될 조건중 하나였으며 성년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12살은 되어야합니다.) 결혼이 무효가된 마팔다는 고향인 포르투갈로 돌아왔습니다. 마팔다의 남편이었던 엔리케 1세는 마팔다와의 결혼이 무효가 된뒤 마팔다의 조카였던 레온의 산차와 약혼을 합니다. 이것은 엔리케의 누나로 섭정의 지위에 있던 베렝가리아를 견제하려던 당시 권세가였던 라라 가문의 영향이었다고 합니다만, 엔리케는 1217년 사망했으며, 카스티야 왕위는 베렝가리아와 그녀의 아들인 페르난도에게 돌아갔습니다.
마팔다의 남편
카스티야의 엔리케 1세
고향으로 돌아온 마팔다는 오빠인 아폰수 2세에게 아버지가 남긴 영지를 달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를 아폰수 2세는 이를 거절합니다. 이 문제는 오래도록 포르투갈의 갈등상황을 남겼으며 결국 아폰수 2세의 아들인 산초 2세때가 되어서야 해결됩니다.
포르투갈에서 마팔다는 시도 수도회의 수녀원에 들어갔으며 자신의 재산을 수도회의 사업과 공공 복지를 위해 썼습니다. 여러곳의 수녀원에 기부를 했을 뿐만 아니라 다리나 병원등을 건설할때도 도움을 주고는 했었습니다. 마팔다는 순례여행 직후 사망했으며, 18세기말에 그녀는 복자로 시복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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