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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130) 조앤 : 존왕의 딸

엘아라 2017. 2.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필받아서 미친듯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130) 조앤 : 존왕의 딸




조앤

웨일즈와 스노우던의 레이디

Joan, 

Lady of Wales and Lady of Snowdon

(c. 1191 – 2 February 1237

조앤의 무덤에 있는 조상


조앤은 존왕과 "레지나 클레멘티나"라고 알려진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습니다. 조앤의 어머니인 "레지나 클레멘티나"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데 아마도 존 왕의 정부였기에 그렇게 알려지게 된것이 아닐까 합니다. 



조앤의 아버지

존 왕


조앤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는데 그녀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에서 성장했던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조앤이 잉글랜드로 온것은 1203년으로 존왕은 딸을 웨일즈의 군주였던 헐웰린 아프 요르웰스와 결혼시키려 했었기에 조앤을 잉글랜드로 부른 것이었습니다.

 

헐웰린 아프 요르웰스는 웨일즈 북부에 있던 귀네드의 군주로 오랜 투쟁 결과 웨일즈 전체를 통치하는 인물이 됩니다. 이때문에 웨일즈에서는 그를 "헬웰린 대왕"(허웰린 바우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결혼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혼으로 헐웰린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외국 왕가와 연결되는 여성과 결혼을 원했으며 존왕의 딸이었던 조앤과 결혼하게 됩니다. 1226년 조앤은 교황으로부터 "적자"로 인정받게됩니다. 물론 그녀의 잉글랜드 계승권이 허용된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녀가 잉글랜드 국왕의 적자라는 지위는 헐웰린에게는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이기도 했죠.



임종전 두 아들과 함께 있는 헐웰린


조앤과 헐웰린 사이에서는 두명이상의 자녀가 태어납니다. 둘의 자녀라고 기록이 명확한 자녀는 둘이며, 여섯명 정도의 아이들이 조앤과 헐웰린의 자녀라고 추정됩니다.


하지만 조앤과 헐웰린 사이가 편안했던것만은 아닙니다. 1230년 포로였던 윌리엄 드 브라오스와 남편의 침실에서 있는 것이 발각이 됩니다. 당시 헐웰린은 윌리엄 드 브라오스를 포로로 잡고 엄청난 몸값을 요구했으며 그의 장녀이며 상속녀였던 이사벨라를 며느리로 맞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조앤과 윌리엄은 체포당했고 윌리엄은 결국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그리고 조앤은 12개월 가택 연금 당한뒤 석방됩니다. 헐웰린은 아내를 용서했고 조앤은 다시 남편 곁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재미난것은 헐웰린은 이 사건으로 이사벨라 드 브라오스와 자신의 아들과의 혼담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결국 이사벨라는 헐웰린의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윌리엄 드 브라오스의 문장


1237년 조앤이 사망했을때 헐웰린은 매우 슬퍼했으며 그녀를 위해 프란체스코 수녀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조앤의 아들인 다비드 아프 헐웰린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웨일즈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만 후손없이 사망했고 웨일즈의 군주 지위는 다비드의 이복 형제들과 그 후손들에게로 이어지게 됩니다. 조앤의 딸이었던 엘렌 베르흐 헐웰린은 두번 결혼했는데 두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를 통해서 켄트 백작 가문의 선조가 되는데, 이때문에 켄트의 조앤을 통해서 리처드 2세 역시 이 조앤의 후손이 됩니다. 또 캔트의 조앤의 손녀들인 레이디 마거릿 홀랜드와 레이디 엘레노어 홀랜드를 통해서는 각각 보퍼트 가문과 요크 가문의 선조가 되면서 결국 튜더 가문 역시 이 조앤의 후손이 됩니다. 



조앤의 후손 중 한명

잉글랜드의 헨리 7세

그는 할아버지인 오웬 튜더를 통해서 직접적인 웨일즈 혈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조상을 막 따져보면 역시나 모계로도 웨일즈쪽 조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