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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132) 앨리스 페러즈: 에드워드 3세의 정부(첫번째)

엘아라 2017. 3.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중세는 영...-0-;;

악명높은 정부가 나오는군요.=0=


정부들과 그 후손들...(132) 앨리스 페러즈: 에드워드 3세의 정부(첫번째)




앨리스 패러즈

Alice Perrers 

(1348–1400) 

에드워드 3세와 앨리스 패러즈

후대의 상상화


에드워드 3세의 정부로 악명이 널리 알려졌었던 앨리스 페러즈는 1348년 허트퍼드셔의 지주이자 기사였던 리처드 패러즈 경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많은 전승에서 그녀가 매우 가난하고 낮은 계급 출신이라고 알려져있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리처드 패러즈 경은 허트퍼드셔에서 중요한 지주중 한명이었으며 그는 의회 의원이기도 했었습니다. 리처드 패러즈 경은 세인트 올번즈 대성당과 분쟁을 겪었으며, 이런 분쟁은 패러즈 가문에 대한 부정적 연대기를 남기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세인트 올번즈의 연대기에서 많이 알려지게 되는 앨리스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실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인트 올번즈의 연대기에 따르면 앨리스 패러즈는 타일 노동자와 창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뛰어난 미모를 가지지도 않았지만 마법으로 국왕인 에드워드 3세를 현혹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앨리스 패러즈가 리처드 패러즈 경의 딸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대기의 기록처럼 마법같은 언변으로 국왕 에드워드 3세를 매혹시켰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앨리스가 아주 못생겼다는 언급은 앞쪽의 출신과 같이 그녀를 깍아내리기 위한 비난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앨리스가 에드워드 3세를 만난것은 1362년 궁정으로 와서 왕비였던 에노의 필리파의 시녀로 일하면서 였을듯합니다. 앨리스가 왕비의 시녀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출신이 미천했다는 의견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적게 됩니다. 왕비의 시녀가 되려면 어느정도 신분이 있는 집안의 여성이어야했으며, 적어도 신분이 낮디 낮았다면 왕비의 시녀가 될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노의 필리파


앨리스 패러즈가 에드워드 3세의 정부가 된것은 1363년경으로 그녀가 15살때였습니다. 이때 에드워드 3세는 52살이었는데, 왕비인 에노의 필리파가 살아있는 동안 앨리스 패러즈와 에드워드 3세의 관계는 비밀리에 붙여졌다고 합니다. 아마도 중세시대 정부는 죄악의 상징이었으며, 앨리스 패러즈와 에드워드 3세의 나이차도 너무 컸기에 비밀에 붙여졌을 것입니다.


이런 앨리스 패러즈가 부각된 것은 왕비인 에노의 필리파가 사망한 1369년 이후입니다. 에노의 필리파가 사망했을때 앨리스는 21살이었으며 한창의 나이였습니다. 나이든 국왕은 평생 함께한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으며 주변인물에 더 의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의존한 인물이 바로 정부였던 앨리스 패러즈였습니다.



에드워드 3세


에드워드 3세는 앨리스 패러즈에게 엄청난 선물들을 마구 했으며 이때문에 앨리스는 왕국에서 제일 부유한 여성이 됩니다.에드워드 3세는 과한 선물을 했는데 심지어 죽은 아내의 보석마저 앨리스에게 주는등의 일을 했었습니다. 사실 이런 국왕의 행동은 비난받을만한 행동이었는데 이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 챙긴 앨리스 역시 비난을 벗어나기 힘들었었죠. 국왕은 앨리스 패러즈에게 여러가지 일들을 해줬는데 어린 정부에게 많은 찬사와 재산을 부여한 것은 큰 스캔들 감이었습니다. 그리고 국왕의 이런 총애는 앨리스가 좀더 야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