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ㅎ-0-;;;
사실 글을 미리 써놓긴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대충 내년 새해 특집을 결정해야하거든요.
아직 결정못했습니다.-0-;;;
제니제롬 전기가 손에 안잡힙니다.ㅠ.ㅠ 아님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을 할까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만... 아마 이 글이 올라갈때쯤에는 결정이 나있긴 할겁니다.-0-;;;
잉글랜드의 왕비들...(99) 아라곤의 카타리나 : 헨리 8세의 왕비 (다섯번째)
아라곤의 카타리나
잉글랜드의 캐서린 왕비
헨리 8세의 첫번째 부인
Catherine of Aragon
(Catalina; Katherine)
(16 December 1485 – 7 January 1536)
이제 캐서린은 오래 기다린 끝에 약혼자였던 헨리와 정식으로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할때쯤의 캐서린은 미모가 절정에 오른 나이였습니다. 아마 헨리는 어린시절부터 아름다운 캐서린을 사모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름다웠을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에게서 핍박받았었죠. 이런 곤경에 빠진 아름다운 레이디를 돕는 것이 진정한 기사의 본분이었으며 화려하고 멋진것을 좋아하던 헨리 8세에게 딱 어울리는 역할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아버지의 명으로 캐서린과의 약혼을 비밀리에 취소했었습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캐서린과 결혼합니다.
1509년 6월 11일 캐서린과 헨리는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립니다. 둘의 결혼은 공개적 행사로 치뤄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대관식이 곧 열릴 예정이었으며 또 비록 사면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캐서린이 헨리의 형과 결혼했었던 사실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할수 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기에 그랬을듯합니다.
결혼 직후은 6월 24일 캐서린은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대관하는 헨리와 함께 잉글랜드의 왕비로 대관합니다.
헨리 8세
....한스 홀바인의 그림에 나오는 그모습이 되기전 -0-;;;
헨리와의 결혼이후 이제 잉글랜드의 왕비가 된 캐서린은 부러울것 하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전까지의 경제적 궁핍함은 사라졌으며 이제 가장 부유한 잉글랜드 국왕의 아내로써 경제적인 안락함은 물론 화려한 삶을 살수 있었습니다. 또 국왕이며 그녀의 남편이었던 헨리는 당대 최고의 미남 국왕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인물이었던 데다가 학식도 풍부했고 뛰어난 지적능력에 스포츠나 사냥등을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멋진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아내에 무척 충실해보이기 까지 했기에 캐서린은 부러울것 하나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말을 타고 있는 헨리 8세
190cm의 장신이었던 것도 그렇고 바람둥이었던것도 그렇고 그는 외할아버지인 에드워드 4세를 많이 닮은것같습니다.
또 잉글랜드 사람들 역시 캐서린을 매우 좋아했는데 아름다우며 기품있었으며 신앙심이 깊었던 에스파냐 왕가의 공주였던 캐서린은 많은 사람들이 호감갖는 존재가 됩니다. 게다가 캐서린이 왕비가 되면서 에프스파냐와 잉그랜드 사이에 관계가 더 돈독해졌고, 플랑드르 지방과의 무역관계도 더 활발해졌기에 경제적 면에서도 왕비의 존재가 매우 긍정적 효과를 나타냈었죠. 이런 상황은 후에 헨리 8세가 캐서린에게 등을 돌렸을때 조차도 사람들이 캐서린 왕비를 지지하는 이유중 하나로 남게 됩니다.
결혼초 아내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헨리 8세는 점차 나이가 들면서 국왕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부부는 여전히 행복한것처럼 보였지만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던 헨리 8세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다른 곳으로 서서히 눈을 돌리게 됩니다.
캐서린은 결혼직후 임신을 했습니다만, 첫아이를 사산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죠. 첫아이를 잃은 캐서린은 둘째아이를 건강하게 낳기 위해 모든 신경을 아이에게 쏟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도 헨리 8세가 아내의 눈을 피해 다른 여성들에게 눈을 돌리는것에 그다지 신경을 못쓰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둘째는 아들이었지만 아이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사망합니다. 이후 계속해서 아이들이 태어나지만 메리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은 어려서 죽거나 사산되었습니다. 사실 메리를 임신할때도 헨리 8세는 이미 후계자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만 메리가 건강하게 태어나자 이후 다시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뒤로 딸이 한명 더 태어난 뒤에 캐서린과의 사이에서는 더이상 아이를 얻을수 없게 되죠.
캐서린의 딸 메리
후에 잉글랜드의 메리 1세
"블러디 메리"
캐서린에게 연이은 임신과 아이들의 사산이나 어려서 사망한것은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잦은 임신 역시 캐서린의 건강을 헤치는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결혼할때 빛나도록 아름다웠던 캐서린은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갑작스럽게 늙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헨리 8세는 아마도 아이들의 잇다른 죽음과 후계자가 될 아들을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한 큰 실망감에 더욱더 다른 여성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때 캐서린이 할수 있었던 일은 고작 살아남은 딸 메리를 돌보는것과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의무를 충실히 하고 늘 그랬듯이 기도하는 것이 다였을 것입니다.
헨리 8세는 1519년 정부였던 벳시 블런트에게서 건강한 아들을 얻습니다. 그는 이 아들에게 '헨리 피츠로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헨리 피츠로이가 태어나면서 헨리 8세는 건강한 후계자를 얻는것에 실패한 것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 아내의 탓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인 캐서린이 더이상 아이를 낳을수 없게 되자 아마 이런 생각은 더 강하게 들었을 것입니다. 이때부터 헨리 8세가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성와 결혼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었다고 합니다.
헨리 피츠로이
리치몬드와 서머셋 공작
후계자 문제때문에 골치아파하던 헨리 8세는 한때 그를 자신의 적자인 메리와 결혼시켜서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만들겠다는 황당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메리는 헨리 피츠로이의 이복누나인데 그게 용납이 되냐고요..-0-;;;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
2.헨리 8세와 여인들(앨리슨 위어, 박미영, 루비박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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