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100) 아라곤의 카타리나 : 헨리 8세의 부인(여섯번째)

엘아라 2017. 1. 2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이쪽 글도 급하게 쓰고 있습니다.

해야할 것이 너무 많아요..흑흑흑...



잉글랜드의 왕비들...(100) 아라곤의 카타리나 : 헨리 8세의 부인(여섯번째)




아라곤의 카타리나

잉글랜드의 캐서린 왕비

헨리 8세의 첫번째 부인

Catherine of Aragon

(Catalina; Katherine)

(16 December 1485 – 7 January 1536)


1520년대 중반이 되면서 캐서린은 더이상 아이를 가질수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헨리 8세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는 이제 더이상 아내에게서 적자인 아들을 얻을수 없는것에 대해 매우 낙담하고, 그것이 성경을 거슬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형수와 결혼하지 말것을 이야기하는데 그의 아내인 캐서린이 그의 형수였기에 결국 하느님의 벌로 후계자를 얻을수 없다는 생각이었죠.

게다가 그는 정부에게서 건강한 아들을 얻었었으며 결국 이것은 그가 다른 여성을 찾는다면 아들을 얻을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했을 것입니다.


헨리 8세


1525년 헨리 8세는 여러 여성들과 관계가 있었는데 역시 아내의 시녀중 한명에 눈독을 들이게 됩니다. 바로 앤 불린이었죠. 헨리는 이미 앤의 언니인 메리 불린을 자신의 정부로 삼았었습니다. 유부녀였던 메리와 달리 앤은 미혼이었죠. 앤은 언니와 다른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알았고, 결국 다른 여성이 나타나면 버림받을 그의 정부가 되길 거절했었죠.


앤 불린 


이런 상황이 되자 헨리 8세는 캐서린과의 결혼이 잘못된것이라고 더욱더 굳게 믿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와 이혼을 결심하게 되죠. 헨리 8세는 성경의 근거를 들어서 아내와의 결혼을 무효로 해달라고 교황에게 청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문제였었죠. 이미 교황은 이 문제에 대해서 사면장을 내려준 상황이었죠. 그렇기에 헨리 8세가 캐서린과 결혼할수 있었던 것이죠  게다가 교황은 이때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 마찰을 빚었고 결국 카를 5세는 이탈리아로 가서 교황의 세력을 꺽어놓게 됩니다. 특히 1527년 로마 약탈 사건이후 교황은 황제에 의해 유폐된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카를 5세는 캐서린의 조카이기도 했습니다.그는 적어도 자신의 이모의 결혼이 무효가 되는 것을 두고보지만은 않을 것이었으며 또 꼬투리 하나라도 얻고 싶어했던 카를 5세가 헨리 8세와 이모의 결혼 무효를 교황이 승인해줄경우 가만히 있지 않을것은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었죠.



1527년 로마 약탈


이 상황을 중재하려던 인물은 헨리 8세가 총애했던 신하였던 토마스 울지 추기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정치 상황은 캐서린과 헤어지고 싶어하는 헨리 8세의 뜻을 들어줄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울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앤 불린을 궁정에서 추방하려는 음모까지 꾸미게 되지만, 이는 성공하지 못했으며, 헨리 8세는 울지를 체포했고 울지는 결국 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1531년 헨리 8세는 아내인 캐서린을 궁정에서 추방했고, 왕비가 쓰던 방은 이제 앤불린에게 넘어가게 되죠. 이런 상황은 헨리 8세가 이제 캐서린을 버리고 앤 불린과 결혼하려한다는 것을 누가봐도 알수 있게 해줬습니다.


캐서린은 이렇게 다시 한번 잉글랜드 궁정에서 핍박받는 존재가 됩니다.





아내 뒤에서 앤 불린과 연애질 중인 헨리 8세

후대의 그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