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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나탈리아 키릴로브나 나리쉬키나 : 짜르 알렉세이의 부인(두번째)
나탈리아 키릴로브나 나리쉬키나
Natalya Kirillovna Naryshkina
(Ната́лья Кири́лловна Нары́шкина)
(1 September 1651 – 4 February 1694)
정치적 이유때문에 유배생활아닌 유배생활을 했던 나탈리아는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오게 됩니다. 1682년 나탈리아의 의붓아들이자 짜르였던 표도르 3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였습니다.
짜르 알렉세이가 사망했을때 남아있는 그의 아들들은 셋이었습니다. 표도르,이반,표트르였죠. 이중 이반은 어려서부터 건강이 나빴기에 모두들 후계자 감이 아니라고 여겼었습니다. 게다가 위로는 표도르가 있었기에 황위 계승은 표도르에게 돌아갔어습니다. 하지만 표도르 3세가 후계자없이 사망하게 되자 다시 이반과 표트르가 황위계승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귀족들, 특히 나리쉬킨 가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표트르가 당연히 짜르가 될것이라 여겼었습니다. 나탈리아는 아들과 함께 모스크바로 돌아갔으며, 나탈리아의 후원자였던 마트예프 역시 유배에서 돌아오게 됩니다.
어린 표트르 대제
나탈리아의 아들
이렇게 되자 이제까지 권력을 가지고 있던 밀로슬라브스키 가문과 이반의 누나인 소피아는 이 상황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반을 황위에 올리기 위해 음모를 꾸몄으며 결국 1682년 모스크바에서는 큰 소요사태가 일어나게 됩니다. 밀로슬라브스키 가문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나리쉬킨 가문을 지지하던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왕궁에 침입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나탈리아의 두 형제와 아버지나 다름없었던 마트예프 역시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나탈리아의 친아버지인 키릴은 강제로 수도원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1682년 모스크바 소요사태중을 묘사한 작품
후대 그림
사실상 권력은 표트르의 누나인 소피야 알렉세예브나가 장악했으며 표트르와 나탈리아에게는 권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대제"라는 칭호를 듣게 되는 표트르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1689년 17살의 표트르는 누나인 소피야를 실각시켰으며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표트르를 도운 인물이 바로 어머니인 나탈리아였죠. 나탈리아는 며느리로 모스크바의 유력 귀족의 딸이었던 에우도시아 표도로브나 루프킨나를 선택합니다. 이것은 아들에게 처가가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바탕이 되도록 한것이었죠.
소피아를 몰아낸 표트르는 권력을 손에 넣지만 어머니의 영향력에서는 벗어날수 없었습니다. 나탈리아의 형제중 한명이었던 레프 나리쉬킨은 수상이자 외교장관으로 임명되는 등 나탈리아 주변 인물들이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합니다. 그리고 나탈리아는 아들의 뜻과 반대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등 아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서유럽식 복장을 입은 표트르 대제와 그를 지켜보는 어머니 나탈리아
후대 그림
나탈리아는 1694년 43살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어머니 나탈리아가 사망한 뒤 표트르는 권력을 완전히 장악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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