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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냐-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9) 마리야 밀로슬라브스카야 : 짜르 알렉세이의 첫번째 황후(두번째)
마리야 일리니츠나 밀로슬라브스카야
Maria Ilyinichna Miloslavskaya
(Мария Ильинична Милославская)
(1625–1669)
마리야와 알렉세이의 결혼 생활을 매우 행복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마리야는 매우 아름다웠다고 알려져있었는데 이때문에 그녀가 마녀이고 이때문에 주술을 터득했으며 염소의 발(악마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비록 마리야의 지위는 아버지와 친정 식구들에게 권력을 부여했었습니다만, 그녀 스스로는 그다지 큰 권력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그녀는 남편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는데 그녀의 남편인 알렉세이는 아내보다 누이들에게 궁정의 일을 맡기는 이야기를 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마리야가 시누이들의 눈치를 어느정도 봤다는 것을 추정할수 있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알렉세이
게다가 당대 러시아에서는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여성이 가족이 아닌 남성을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며 바깥 출입 역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외출할때는 모습을 가렸었으며 교회에서도 가려진 특별한 구역에서 예배를 볼 정도였었죠. 이런 상황은 마리야가 정치적 권력을 가지는데 큰 제약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약에도 마리야는 종교적 활동이나 자선사업등을 할때면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냈었다고 합니다. 특히 마리야는 이집트의 성 마리야를 공경했으며 성마리야를 위한 공경에 앞장섰다고 합니다.
로마의 성 알렉시우스와 이집트의 성 마리아
알렉세이와 마리야의 결혼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듯합니다.
짜리나로써 마리야의 삶은 편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는데 이런 혼란함은 그녀의 개인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었죠. 이를테면 결혼한 다음해에는 모스크바에서 봉기가 일어났었는데 마리야는 남편과 함께 피난을 갔어야했습니다. 또 모스크바에 페스트가 돌았을때도 아이들과 함께 수도원으로 피해있어야했었죠.
마리야는 알렉세이와의 사이에서 열세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1669년 열세번째 아이를 낳은 뒤 산욕열로 사망합니다. 그녀가 죽었을때 마리야의 남편인 알렉세이는 재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었습니다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다시 재혼했었습니다.
열세명의 자녀들중 성인으로 성장한 두 아들인 표도르와 이반은 둘다 짜르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딸인 소피야는 섭정으로 이복동생인 표트르와의 사이가 나쁜것으로 잘 알려져있기도 합니다.
마리야의 딸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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