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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17)마리아 루이사 : 카를로스 3세의 딸

엘아라 2016. 2.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카를로스 3세의 딸들중 성인으로 성장한 딸은 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시칠리쪽 분가를 제외하고는 자녀가 없거나 후손까지 몽땅 아들이더군요.

음냐.... 왠지 편한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같기도 하고 애매하네요..ㅎㅎㅎㅎㅎ


에스파냐의 인판타들...(17)마리아 루이사 : 카를로스 3세의 딸




에스파냐의 마리아 루이사

신성로마제국의 마리아 루도비카 황후

레오폴트 2세의 황후

Infanta Maria Luisa of Spain

(María Luisa, Maria Ludovika

(24 November 1745 – 15 May 1792) 


마리아 루이사는 1745년 나폴리에서 당시 나폴리 국왕이었던 카를로와 그의 부인인 작센의 마리아 아말리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위로는 네명의 언니들이 태어났습니다만, 마리아 루이사가 태어난 시점에서는 마리아 이사벨 안나와 마리아 호세파 두명의 언니만 있었죠. 하지만 마리아 이사벨 안나가 일찍 사망하면서 마리아 루이사는 카를로의 둘째딸로 남게 됩니다.



마리아 루이사의 아버지 카를로스 3세

나폴리 국왕 시절


1759년 마리아 루이사가 14살무렵 아버지인 카를로가 에스파냐의 국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아 루이사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에스파냐로 가게 됩니다. 마리아 루이사의 남동생이었던 페르디난도만이 시칠리와 나폴리의 국왕으로 나폴리에 남아있었습니다.



어린시절의 인판타 마리아 루이사



마리아 루이사는 에스파냐의 인판타였으며 외교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혼담이 오가게 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외교적 목적을 위해 부르봉 가문과의 통혼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와의 복잡한 관계 때문에 마리아 루이사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장남이자 후계자였던 요제프2세와 혼담이 오갔을듯합니다. 하지만 루이 15세는 자신의 외손녀인 파르마의 이사벨라와 요제프가 결혼하길 원했었기에 마리아 루이사와 요제프와의 혼담을 없었던 일이 됩니다. 대신 마리아 루이사는 요제프의 동생이자 마리아 테레지아의 차남이며 토스카나 대공령의 후계자였던 레오폴트와 혼담이 진행되죠.



레오폴트 대공


1764년 만 18살의 마리아 루이사는 마드리드에서 오스트리아 대공이자 토스카나 대공령의 후계자인 레오폴트와의 대리혼을 치룹니다. 결혼전 마리아 루이사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에스파냐 왕위계승권을 포기했는데 아마도 이것은 카를로스 3세가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시 에스파냐 계승권을 얻는것을 원치 않았었기에 그랬을듯합니다. 그리고 1765년 8월 마리아 루이사는 인스부르크에서 레오폴트 대공과 결혼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와 레오폴트 대공 부부와 그 자녀들


결혼 직후 마리아 루이사의 시아버지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며 토스카나 대공이었던 프란츠 슈테판이 사망합니다. 프란츠 슈테판이 죽음으로써 레오폴트는 아버지에게서 토스카나 대공 지위를 상속받았으며 레오폴트는 토스카나 대공으로 토스카나를 통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떠나게 되죠. 마리아 루이사 역시 남편과 함께 토스카나로 떠나게 됩니다. 



레오폴트 대공

....아들인 프란츠 1세랑 정말 비슷하군요-0-;;;


마리아 루이사는 푸른눈에 활기찬 매력을 가진 여성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밝고 따뜻한 성격에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의 마리아 루이사는 때때로 차가운 성격이라고 이야기되는 남편 레오폴트와는 매우 대조되는 성격의 인물로 비춰졌었습니다. 또 그녀는 매우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받았기에 신앙심이 매우 깊었으며, 결혼생활에 매우 만족했으며 어려움없이 많은 아이들을 낳았기에 후계자문제를 늘 걱정했던 시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매우 기쁨을 줬었다고 합니다. 레오폴트는 당대 많은 다른 군주들처럼 정부들이 있었고 다른 여성들과 연애를 했지만, 마리아 루이사는 늘 남편에게 성실한 아내였었죠. 



아이들과 함께 있는 토스카나 대공 부부


토스카나 대공령에서 마리아 루이사는 정치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으며 대신 자선사업등에 집중을 합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여성의 미덕의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마리아 루이사와 레오폴트 둘다는 공적인 행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습니다. 레오폴트는 정치와 자신의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많이 보냈으며  이때문에 마리아 루이사는 홀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으며 홀로 있는 많은 시간동안 아이들의 양육에 집중했었죠. 마리아 루이사는 아이들을 궁정에서 떨어져서 매우 자유롭게 키웠으며 이때문에 마리아 루이사 역시 친한 친구들을 제외한 많은 이들이 잘 알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루이사


1790년 마리아 루이사의 남편인 레오폴트는 형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합니다. 마리아 루이사는 황후가 되었고 빈으로 가게 되죠. 그리고 마리아 루이사의 남편인 레오폴트2세는 황제가 된 지 2년후인 1792년 사망합니다. 그리고 마리아 루이사는 남편이 죽은지 한달도 되지 않아 사망하게 되죠.



마리아 루이사


마리아 루이사와 레오폴트 2세 사이에서는 모두 열여섯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장남인 프란츠는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으며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오스트리아 황제가 되는 인물이었죠. 차남인 페르디난도는 토스카나 대공령을 물려받았고,셋째아들인 카를 대공은 고모 부부에게 입양되어서 테센 공작령을 물려받았습니다. 다섯째아들인 요제프는 헝가리쪽 영지를 물려받았었죠. 여덟째아들인 요한은 안나 플로흘과의 귀천상혼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마리아 루이사와 레오폴트 그리고 자녀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