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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14)인판타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 : 펠리페 5세의 딸

엘아라 2016. 1.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에스파냐의 인판타들...(14)인판타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 : 펠리페 5세의 딸




에스파냐의 마리아 테레사 안토니아 라파엘라

에스파냐의 인판타

프랑스의 도핀느

Maria Teresa Rafaela of Spain 

(María Teresa Antonia Rafaela) 

(11 June 1726 – 22 July 1746)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 안토니아 라파엘라는 1726년 마드리드의 로열 알카사르에서 펠리페 5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엘리자베트 파르네세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펠피레 5세와 가족들, 1735년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는 1739년 프랑스와의 우호를 위해 결혼이 결정됩니다. 펠리페 5세는 루이 14세의 손자이자 루이 15세의 숙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달리고 있었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루이 15세가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의 언니였던 마리아나 빅토리아와의 약혼을 깼기 때문이었죠. 이후 양국은 다시 혼담을 통해서 우호를 다지려했고 이런 상황으로 혼담이 진행되었죠.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의 오빠였던 펠리페는 루이 15세의 딸이었던 엘리자베트 루이즈와 1739년 결혼합니다. 그리고 결혼식후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와 도팽의 약혼이 발표되었죠. 


하지만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의 어머니였던 이사벨 왕비는 딸을 프랑스 궁정으로 보내지 않고 결혼할때까지 에스파냐에 그대로 남도록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마리아 테레사의 언니였던 마리아나 빅토리아가 국왕의 약혼녀로 어려서 프랑스 궁정으로 보내졌다가 파혼당한뒤 돌아온 사건이 영향을 미쳤을듯합니다.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 



1744년말 마드리드에서 대리혼을 치룬 뒤,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는 프랑스로 떠납니다. 그리고 1745년 2월 베르사유에 도착해서 결혼식을 치루죠. 그녀와 도팽의 결혼식 축제의 가장 무도회에서 루이 15세는 아름다운 여성 한명을 소개 받았죠. 그녀가 바로 마담 드 퐁파두르였죠.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는 자신보다 세살 어린 도팽 루이와 처음에는 서먹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둘의 결혼이 오래도록 "완성"되지 못하는 상황을 낳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처음에는 도팽이 그녀를 낯설어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는 시부모에게 매우 잘했으며 이런 행동은 도팽의 호감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팽과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죠. 



도팽 루이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의 남편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는 남편처럼 마담 드 퐁파두르나 국왕의 다른 정부들을 싫어했는데 이것은 그녀가 시어머니인 마리 레슈친스카를 그만큼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녀가 궁정에서 약간은 소외당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는 시누이들이나 남편처럼 대놓고 마담 드 퐁파두르에게 적의를 내보였는데 당시 궁정을 장악하고 있었던 사람은 마담 드 퐁파두르였으며 이런 상황은 도핀느에게 좋지 못한 상황이었죠.



마담 드 퐁파두르


1746년 7월 19일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는 아이를 낳습니다. 하지만 22일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는 사망하죠. 아내의 죽음에 도팽은 매우 충격을 받았으며 아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때문에 루이 15세가 아들을 강제로 며느리의 시신 곁에서 떼어놓아야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는 생 드니에 묻혔습니다.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의 오빠였던 페르난도 6세는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의 동생인 마리아 안토니아를 도팽의 아내로 추천합니다만 루이 15세는 이 혼담을 거절했습니다. 이후 도팽은 한동안 결혼을 미뤘지만 결국 작센의 마리아 요제파와 재혼하게 되죠.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의 장례식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