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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러시아를 그리워한 그리스 왕비 : 그리스의 올가 왕비(10) 남편의 죽음

엘아라 2016. 1.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새해특집] 러시아를 그리워한 그리스 왕비 : 그리스의 올가 왕비(10) 남편의 죽음


그리스의 복잡한 정치 상황은 언제나 왕실을 불안하게 만들었었습니다. 첫번째 국왕이었던 오톤은 쫓겨나야했었고 그의 전처를 밟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올가의 남편 게오르기오스는 언제는 정치상황에 힘들어하고 낙담해서 퇴위나 양위를 자주 고려할 정도였었습니다. 



게오르기오스 1세


그리스인들이 살던 많은 곳이 아직까지도 터키의 영토로 남아있었으며 이곳에 살던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도 터키가 아닌 그리스 영토에 편입되길 바랍니다. 물론 그곳에 살던 터키인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상황은 자주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분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분쟁이 국민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경우 지도자였던 국왕은 비난 받을수 밖에 없었죠.


1897년 터키와 그리스간의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총사령관은 올가와 게오르기오스의 장남인 콘스탄티노스였습니다. 사실 이 전쟁은 준비된 전쟁이 아니었기에 그리스측에 불리할수밖에없었으며 전쟁의 패배는 고스란히 지휘자였던 콘스탄티노스와 국왕인 게오르기오스에게 돌아가게 되죠. 다행히 영국과 러시아 독일등 결혼관계로 그리스 왕가와 엮인 강대국들의 중재로 영토를 뺏기지는 않았습니다만 대신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야했죠. 이런 상황은 그리스 내에서 국왕의 인기를 떨어뜨렸으며 결국 암살시도가 발생합니다. 게오르기오스는 딸인 마리아와 함께 있었는데 암살시도가 있었을때 국왕은 숨지 않고 매우 당당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암살 시도는 실패했고 국왕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스는 한동안 국외에 있어야했었죠.



1897년 터키-그리스간 전쟁중


1900년대 후반, 크레타 문제가 심화되면서 결국 그리스 내에서는 쿠데타가 발생합니다. 군인이었던 왕자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모두 사임하고 국외로 떠나야했었죠. 이때 게오르기오스 1세는 퇴위를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쿠데타 세력도 오래가지 못했으며, 게오르기오스 1세는 이들을 잠재울만한 정치가와 손을 잡게 됩니다. 바로 그리스 근현대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였습니다. 그는 변호사 출신으로 크레타 문제에 적극적인 인물로 유명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존경했고 게오르기오스 1세는 그와 손을 잡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그리스의 위대한 꿈인 "모든 그리스인들이 사는 곳을 하나의 국가로 묶는"작업에 뜻을 함께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군사력을 길렀고 왕자들 모두 다시 그리스 군으로 돌아올수 있게 되었죠.



베니젤로스



1912년 발칸전쟁이 일어나면서 베니젤로스와 게오르기오스의 작업은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전에 실패한 지휘관이었던 콘스탄티노스는 이제 개선의 장군이 되죠. 중요한 도시였던 텟살로니키를 그리스 군이 점령했고 콘스탄티노스와 베니젤로스는 함께 이곳에 입성할 정도였죠. 이런 중요한 상황은 국왕 역시 텟살로니키로 가게 만듭니다. 국왕은 이곳에 머물면서 전쟁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13년 3월 게오르기오스는 여느때처럼 텟살로니키에서 경호원없이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국왕에게 누군가 총을 쏘게 되죠. 



게오르기오스 1세의 암살


남편이 죽었을때 올가 왕비는 아테네에 있었습니다. 왕비는 전쟁동안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 했었고 병사들을 위문하고 간호하는 일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올가 왕비는 아들들인 니콜라오스와 안드레아스에게서 남편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왕비는 울면서 남편의 회복을 기도했죠. 하지만 곧 며느리인 소피아로부터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왕비는 "그와 평생 행복했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것이 하느님의 의지다"라고 이야기했었죠.


남편의 죽음은 전해들은날 올가 왕비는 충격으로 앓아 눕게 됩니다. 하지만 다음날 왕비는 검은 상복을 입고 죽은 국왕의 아내이자 새 국왕의 어머니로써 해야할일들을 하죠. 그녀는 아들과 함께 텟살로니키로 가서 장례식을 위해 남편의 시신을 모셔옵니다. 처음으로 시신을 본 올가 왕비는 한시간동안 남편 곁에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테네에서 남편의 장례식을 치루죠. 



게오르기오스 1세의 장례식


게오르기오스 1세의 죽음은 복잡한 그리스 정치사에서 최고의 정점인 사건중 하나였습니다. 아이러니한것은 생전에 그렇게나 비난받았던 국왕이었지만 그의 죽음은 그에 대한 비난을 잠재웠으며 그의 좋은점들만 기억하게 했다는 것이죠. 또 그의 죽음으로 전쟁이 확대될것을 우려했었던 베니젤로스는 그의 살해범이 그리스인이라는 소식에 매우 안도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안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2차 발칸전쟁은 일어나고야 말게 되죠.


남편의 장례식 이후 올가 왕비는 그리스 국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언론에게 공개합니다.

"내 슬픔에 대한 그리스 국민들의 진심어린 걱정은 제 맘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 나는 나를 향한 그리스 국민들의 걱정에 대해 진심으로 우러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올가 왕비는 슬픔을 가누지 못했고 결국 잠시 그리스를 떠나있게 됩니다. 올가 왕비는 나빠진 눈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독일로 갔으며 이후 남편의 친한 누나였던 알렉산드라가 있는 영국을 방문했으며 이후 친정인 러시아로 가서 한동안 머물게 되죠. 



상복을 입은 올가 왕비


자료&그림출처

앞쪽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