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0-;;
아직 왕비로써의 삶은 시작도 안햇는데 번호가 왜 지렇게 된거랩니까..
올해는 화려하게 열다섯편쓰는건가요-0-;;;(가능할수도..쿨럭...)
....하지만 아직까지도 잠적 고려중입니다.-0-;;;;
[새해특집] 러시아를 그리워한 그리스 왕비 : 그리스의 올가 왕비(8) 그리스에서의 가족생활
겨우 열여섯살을 갓 넘겨서 결혼한 올가는 그리스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마도 왕비로써의 삶을 다짐했을 겁니다. 물론 그녀의 짐에는 아직까지도 가지고 놀던 인형들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린 소녀였으며 왕비로써의 일은 너무나 힘든 것이었습니다. 겨우 열여섯살의 어린 소녀가 조국을 떠나 주변에 친한 사람 거의 없는 외로운 궁정에서 지낸다는 것은 힘들일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그리스어를 한마디도 못했었죠. 이런 상황은 그녀가 자주 울면서 지낸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올가가 그리스에 도착했을때 오랜 환영행사가 열렸는데 올가는 지속되는 행사에 올가는 너무나 힘들어해서 한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을때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까 올가는 자신의 테디베어를 안고 울고 있었다고 하죠.
결혼할때 쯤의 올가
이런 우울함과 힘들어한 것은 다른 이유때문에 더 가중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올가는 만 17살이 되기 직전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에 온 초기부터 이미 임신상태였기에 어린 올가가 이런 임신 상황에 힘들어한것은 당연한 것일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올가의 장남은 결혼 다음해인 1868년 여름에 태어났습니다. 올가의 장남에게 붙여진 이름은 "콘스탄티노스"였습니다. 이 이름은 올가는 물론 그리스 사람들 모두에게도 기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올가의 아버지이름을 딴 것이긴 했을 것이지만, 그리스에서는 오래도록 콘스탄티노스가 소피아와 통치한다면 위대한 그리스를 재현할수 있을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콘스탄티노스라는 왕위계승자의 이름은 환영받는 이름이었죠.(게다가 후에 그는 진짜 소피아-프로이센의 조피-라는 이름의 아내를 얻었습니다. 뭐 전승되는 이야기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아마 다른 콘스탄티노스와 소피아여야하나 보죠 뭐.-0-;;;)
이후 연년생으로 아들인 게오르기오스와 딸인 알렉산드라를 낳았으며 이후로도 니콜라오스,마리,올가,안드레아스,크리스토포로스 이렇게 다섯아이를 더 낳았습니다. 그중 올가는 어려서 사망햇지만 나머지 일곱아이들은 모두 성인으로 성장했었죠.
게오르기오스 1세와 올가 왕비, 그리고 올가의 사촌이자 후에 사위가 되는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다섯명의 자녀들,
올가는 자신이 러시아인임을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자주 그리워했으며 자주 러시아에 가있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의외로 정치적 상황때문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그리스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자주 선거를 치뤘는데 게오르기오스 1세와 그 가족들은 선거에 왕실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선거철마다 외국으로 나갔으며 이때문에 자주 외국의 친척들을 방문하게 되었죠. 이런 상황은 올가가 고향인 러시아에 자주 갈수 있었던 중요한 상황일듯합니다. 또 올가의 남편인 게오르기오스는 누나인 알렉산드라나 여동생인 마리야 표도로브나와도 친했으며 고향인 덴마크를 그리워했기에 자주 덴마크로 갔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올가 역시 시댁식구들과 자주 만나는 계기를 마련했었죠.
덴마크 크리스티안9세의 자녀부부들과 손자손녀들
그런데 올가 왕비가 안보이는군요.--;; 게오르기오스 1세 옆의 여자는 딸인 알렉산드라 공주일겁니다.
그리스 왕가 사람들은 아테네에 있는 궁전에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그곳 보다는 아테네 근처의 타토이에 있는 왕실 연지에 있는 집을 자신들의 집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고향을 그리워한 게오르기오스 1세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쌓인 이곳에 덴마크식 시골집을 지었죠. 그리스 왕가 가족들은 이곳을 너무 사랑했었죠. 타토이는 주로 왕실 가족들이 여름에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또 코르푸섬에 있던 몬레스포 역시 가족들이 좋아하던 거처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올가 왕비와 게오르기오스 1세는 아이들에게 다정한 부모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게오르기오스 1세는 아이들에게 엄격한 아버지였지만, 아이들의 놀이에 참가하고는 했다고 합니다. 올가 왕비는 자신의 어린시절처럼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길 바랬을 듯합니다. 또 올가 왕비는 아이들이 독실한 정교회 신자로 성장하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올가 왕비의 딸이었던 마리아는 어머니에 대해서 매우 신실한 신자였다고 합니다. 올가 왕비는 신의 뜻을 의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죠.
게오르기오스 1세와 올가 왕비
올가 왕비와 게오르기오스 1세는 친척들과의 연결을 매우 중요시했었습니다. 이것은 게오르기오스 1세의 부모인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와 루이제 왕비의 영향이었습니다. 사실 크리스티안 9세는 국왕이 되기전 작은 방계가문 출신의 군인이었으며 재산도 많지 않았고 이런 상황은 덴마크 왕실 가족들이 당대 다른 왕족들과 달리 매우 다정하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게 만듭니다. 덴마크 국왕 부부는 손자손녀, 외손자외손녀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좋아했고, 알렉산드라와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자주 친정을 찾아갔었죠. 이런 관계는 그리스 왕가의 사람들이 영국,하노버,러시아 황실 가족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올가 왕비는 웨일즈의 조지 왕자(후에 조지 5세)와 친한 사이가 됩니다. 조지 왕자는 다정한 올가 왕비를 좋아했으며 그가 제일 좋아한 친척이었다고 합니다. 올가 왕비 역시 해군이었던 조지를 좋아했을듯합니다. 왕비는 해군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해군에 관심이 많았고 이런것은 자신을 잘 따르는 조카 조지에게 더 다정하게 대하는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웨일즈의 에디와 조지와 함께 있는 올가 왕비와 게오르기오스 1세
올가 왕비와 게오르기오스 1세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며 아이들에게도 다정한 부모였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결혼생활은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하는 것이며 결국 올가 왕비의 어느정도 희생을 통해서 이뤄진것입니다. 왕비는 남편이 정기적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휴가 기간동안 게오르기오스1세가 무슨일을 하는지 관여하지 않았죠. 사실 많은 왕족들이 이런 상황을 참고 살았었습니다. 훗날 올가의 장남인 콘스탄티노스 역시 결혼후 아버지처럼 "휴가"를 떠났는데, 그의 아내였던 조피는 이를 못참았으며 시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게오르기오스 1세는 그녀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디어 마마(올가 왕비)"에게 이야기해보라고 했었을 정도라고 하죠.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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