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게오르기오스 1세 이야기를 여기서 써야할지 아니면 따로 빼야할지 고민이군요.
[새해특집]러시아를 그리워한 그리스 왕비: 그리스의 올가 왕비(6)결혼
1863년 올가가 12살일 무렵, 그리스의 젊은 국왕인 게오르기오스 1세가 러시아를 방문합니다. 그는 막 그리스의 국왕으로 선출되었는데 이를 지원해준 러시아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방문한것이었죠. 올가는 이때 처음으로 열일곱살의 그리스 국왕을 만났었습니다. 하지만 올가는 그가 자신의 남편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 1863년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1세는 원래 덴마크의 빌헬름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났을때는 물론 심지어 그가 그리스 국왕이 될때 까지도 국왕의 아들은 아니었죠. 당시 덴마크는 복잡한 왕위계승문제에 직면해있었고, 결국 빌헬름 왕자의 아버지이자 덴마크 왕가의 먼 방계 가문 출신이었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데르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크리스티안이 추정왕위계승자로 지정되었었습니다. 크리스티안이 추정왕위계승자가 된것은 그의 아내인 헤센-카셀의 루이제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녀는 사실상 남편보다 더 높은 왕위계승권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그녀와 결혼하므로써 크리스티안이 추정왕위계승자가 되는것에 유리하게 된것이었죠.
하지만 이 가문이 진짜 운이 편것은 아름다운 딸들 덕분이었습니다. 게오르기오스 1세의 누나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는 당대 최고의 미녀였으며, 이런 미모때문에 영국의 왕위계승자와 결혼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알렉산드라의 동생인 빌헬름이 그리스 국왕으로 선출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는 강대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등과 연줄을 갖길 바랬으며, 빌헬름은 이런 연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죠.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와 가족들, 즉위전, 1862년
빌헬름이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로 즉위한 해, 그의 아버지 역시 덴마크의 국왕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더중요한 일이 벌어지죠. 바로 게오르기오스 1세의 여동생인 다우마가 러시아의 황태자와 약혼한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게오르기오스 1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다우마의 약혼자였던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결혼전 사망합니다만, 러시아 황실에서는 여전히 다우마를 황후감으로 여겼으며 형의 뒤를 이은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을 다우마와 결혼시킵니다. 덴마크의 다우마는 1866년 러시아의 황태자와 결혼해서 "마리야 표도로브나" 대공비가 됩니다.
게오르기오스 1세의 누나와 여동생, 알렉산드라와 마리야 표도로브나
왼쪽이 마리야 표도로브나, 오른쪽이 알렉산드라 입니다.
1867년 열아홉살이던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는 여동생이자 러시아의 황태자비가 된 마리야 표도로브나를 만나러 러시아로 가게됩니다. 그는 이제 신부감을 찾고 있었는데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오빠의 신부감으로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황태자비의 적극적 지지속에 올가와 게오르기오스의 혼담이 진행됩니다. 올가는 게오르기오스에 대해서 훗날 자신은 "국왕이 아니라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치적인 문제로만 결혼한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는 무시할수 없었죠.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 1867년
게오르기오스 1세는 개신교도였지만 그리스는 정교회를 믿었으며 이때문에 그는 결혼후 자녀들은 정교회로 키우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자녀들의 종교를 위해서는 정교회를 믿는 아내를 얻는편이 좋았는데 러시아의 여대공들은 모두 정교회를 믿었으며 신앙심이 깊었다고도 알려져있었죠. 게다가 그리스는 강대국와의 연줄이 중요했는데 왕비가 러시아 여대공인것은 그리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는 발칸반도에서 터키와 다른 여러 나라들과 마찰이 있었고, 가장 가까이 있는 러시아가 이런 상황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 혼담이 시작될때 올가는 겨우 16살이 안되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올가의 아버지인 콘스탄틴 대공이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원인이 됩니다. 딸이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올가의 어머니인 알렉산드라 대공비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대공비는 이 결혼을 환영했으며 사람들에게 올가가 "언제까지나 열여섯살이진 않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알렉산드라 대공비와 함께 있는 올가, 1867년
결국 콘스탄틴 대공은 딸의 결혼을 승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올가는 1867년 10월 27일(구력) 겨울궁전에서 그리스의 국왕과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올가는 만으로 겨우 16살이 갓지났으며 이때문에 그녀가 그리스로 가는 짐에 자신이 가지고 놀던 인형들을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열여섯살인 올가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었으며 그리스의 왕비로써 행동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중압감은 그녀가 평생 행복했던 어린시절과 그 기억이 있는 러시아를 그리워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게오르기오스 1세와 올가 왕비
자료&그림 출처
앞쪽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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