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뭐 대충 그리스 이야기랑 자녀들 이야기까지 넣으면 열다섯편 가능하겠습니다.
최근에 한인물에 대해서 제일 많이 쓴글 같아요-0-;;;;
물론 복잡다난한 그리스 정치사 때문에 좀더 늘어난 감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새해특집] 러시아를 그리워한 그리스 왕비 : 그리스의 올가 왕비(12)스위스에서 그리스로
올가 왕비가 장남인 콘스탄티노스와 함께 있은 가장 큰 원인은 콘스탄티노스의 건강때문이었습니다. 아들에게 양위한뒤 콘스탄티노스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는데 특히 정치적 상황에 따른 좌절감이 그의 상태를 악화시키는데 한몫했을 것입니다. 스위스로 간 올가 왕비는 손자손녀들을 만나서 기뻐했습니다. 아마도 위험한 러시아에서 막 도망쳐온 왕비에게 가족이야 말로 안식처였을 것입니다.
콘스탄티노스 1세
망명중인 그리스 왕가 사람들은 그리 풍족한 삶을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망명한 국왕과 그 가족들에 대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을 거부했었죠. 또 새국왕인 알렉산드로스가 부모를 만나는것을 금지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그리스 왕가 사람들이 전과 같은 호사스러운 삶을 살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었습니다.
올가 왕비도 이런 일에 직면해야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러시아에서 먹을것이 부족한 사태도 겪었으며 살던곳에서 쫓겨나야한 일도 겪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망명객으로써의 삶은 힘든것이었죠. 올가 왕비는 2년동안 서른번도 더 넘게 이사다녀야했습니다. 좀더 값싼 집으로 가기 위해서였죠. 스위스에서 물가가 너무 비쌌기에 왕비는 로마에서 머물것을 고려하기도 했었죠. 이런 힘든 상황이었지만 올가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올가 왕비의 지인이 돈이 급하게 필요하게 되자 왕비는 자신의 새 틀니를 하라고 지원받은 돈을 줄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스 왕가의 재정적 지원을 해준 중요한 인물은 올가 왕비의 두 며느리인 마리 보나파르트와 낸시 리즈였습니다. 미국인이었으며 "철강의 왕"이라고 불렸던 윌리엄 비트만 리즈의 아내였던 낸시 리즈는 30살의 나이로 과부가 된뒤 남편에게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리고 1914년 올가 왕비의 막내아들이었던 크리스토포로스 왕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죠. 낸시는 크리스토포로스보다 10살이나 많았지만, 둘은 결혼하기로 결정했으며 공식 약혼을 합니다. 아마도 그리스 왕실에서는 막내아들이었던 크리스토포로스가 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어느정도 용인했었던듯합니다. 물려받을 재산이 없었던 크리스토포로스가 상속녀와 결혼하므로써 안정적 삶을 누릴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듯합니다. 하지만 둘의 결혼은 오래도록 미뤄졌는데 가장 큰 원인은 전쟁과 그리스 왕가의 망명때문이었죠. 어쨌든 낸시 리즈는 1920년 결국 크리스토포로스 왕자와 정식으로 결혼했으며 그리스 왕가에서는 그녀에게 왕가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의미로 "아나스타샤 왕자비"라는 이름을 부여했었습니다.
크리스토포로스 왕자의 결혼식때
마리 보나파르트는 올가 왕비의 둘째며느리로, 게오르기오스 왕자의 아내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상속녀였으며 일찍 사망했기에 어머니의 부를 마리 보나파르트가 물려받았었죠. 그리고 이런 부때문에 마리는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왕자와 결혼했습니다. 게오르기오스 왕자가 그리스 정치에 신물 나있었으며 부부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기에 오래도록 그리스를 떠나 마리의 프랑스 집에 거주했었습니다. 이런 마리 역시 그리스 왕가의 재정을 지원한 인물이었죠.
이런 망명생활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끝나게 됩니다.
1920년 10월 올가왕비의 손자이자 그리스 국왕이었던 알렉산드로스는 원숭이에게 긁힌 상처가 봉와직염으로 발전해서 사경을 헤메게 됩니다. 아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소피아 왕비는 그리스 정부에 아들곁에 있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만 그리스 정부는 소피아 왕비의 입국을 거절합니다. 아들의 상태를 걱정하던 소피아 왕비는 베니젤로스측에서 입국을 허락할만한 사람을 찾게 되죠. 바로 올가 왕비였습니다. 집권중인 베니젤로스파에서 왕족들중 제일 호의적인 입장을 취한 사람이 올가 왕비였었죠. 결국 올가 왕비는 며느리의 부탁을 받았으며 며칠간의 협상끝에 올가 왕비는 그리스로 입국이 허락됩니다. 하지만 올가가 그리스에 갔을때 그녀의 손자인 알렉산드로스 국왕은 사망한 뒤였죠.
알렉산드로스 1세
이렇게 되자 다시한번 그리스의 정치 상황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베니젤로스측에서는 콘스탄티노스나 그의 장남인 게오르기오스가 국왕이 되는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왕족들, 특히 알렉산드로스의 동생이었던 파울로스는 아버지와 형이 살아있는한 국왕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되죠. 결국 그리스 내에서 콘스탄티노스의 복위가 이야기 되었는데 이를 반대한 베니젤로스 측의 선거 패배로 콘스탄티노스는 다시 그리스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돌아올동안 올가 왕비는 그리스의 섭정으로 임명되게 됩니다. 물론 그녀가 통치를 한것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콘스탄티노스 1세 가족들
1920년경, 알렉산드로스의 죽음뒤라 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장녀인 엘레니와 루마니아의 카롤의 약혼식때쯤인듯합니다.
이렇게 그리스 왕가 사람들은 다시 그리스로 돌아올수 있었으며, 올가 왕비는 이제 조국인 그리스에서 편안한 삶을 누릴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혼란한 그리스 정치사는 올가에게 그리스에서의 마지막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자료&그림출처
앞쪽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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