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읽을것 많은 캐서린 왕비인줄 알았더니 인판타 마리아가 있었군요.-0-;;;;
그런데 자료가 많이 없어요..ㅠ.ㅠ
에스파냐의 인판타들...(7)인판타 마리아 : 가톨릭 공동군주의 딸(첫번째)
아라곤의 마리아
포르투갈의 왕비
Maria of Aragon
(29 June 1482 – 7 March 1517)
아라곤의 마리아는 카스티야와 레온의 여왕이었던 이사벨과 그녀의 남편이자 아라곤과 시칠리의 국왕이었던 페르난도 2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는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마리아의 쌍둥이 자매는 사산된 채 태어났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언니와 여동생들처럼 매우 교육을 잘 받았었는데 이사벨 여왕은 딸들의 교육에 신경을 썼으며 특히 당대 최고의 여성 학작였던 베아트리스 데 갈린도를 초빙해서 딸들의 교육을 맡길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마리아 역시 다른 자매들처럼 라틴어를 읽고 쓸줄 알았을 것은 물론 여러가지 교양을 쌓았을 것입니다. 또 마리아는 아마도 엄격한 가톨릭 교도였던 어머니와 큰언니 이사벨과 달리 둘째언니인 후아나와 비슷하게 종교에 크게 엄격하지는 않았던듯합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
마리아는 오빠와 언니들이 있었기에 왕위계승권에서는 한발자국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가톨릭 공동 군주"였으며, 그녀의 결혼 역시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마리아의 언니인 이사벨이 포르투갈로 시집갔다가 과부가 되어서 돌아온 시점에서 마리아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포르투갈과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톨릭 공동군주는 딸들중 한명을 다시 포르투갈로 시집보내길 바랍니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국왕이 된 마누엘 1세는 가톨릭 공동군주의 딸을 아내로 맞길 바랍니다. 페르난도와 이사벨의 장녀인 이사벨은 마누엘 1세의 조카와 결혼했던 사이로 남편이 죽은뒤 친정으로 돌아왔으며 죽은 남편을 기리며 살빌 바랬다고 합니다. 이에 가톨릭 공동군주는 마리아를 신부감으로 추천하죠.
하지만 마누엘 1세는 더 중요한 왕위계승권자인 이사벨과 결혼하길 원합니다. 이사벨의 남동생이자 마리아의 오빠였던 후안은 허약했으며 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할경우 다음 계승자로 이사벨과 그녀의 후손이 되기 때문이었죠. 마리아는 위에 언니 후아나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왕위계승권과 더 멀었습니다.
가톨릭 공동 군주와 둘의 자녀들인 후안과 이사벨
결국 마누엘 1세는 이사벨과 결혼했으며 마리아는 그와 인연이 없어보입니다.그리고 마리아의 부모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부모는 마리아를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와 결혼시키려 했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여동생이었던 카타리나를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인 웨일즈공 아서와 결혼시켰기에 마리아를 스코틀랜드 국왕과 결혼시키므로써 두 나라간의 평화에 기여하고 가톨릭 공동군주의 외교적 영향력을 더 확대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1498년 마리아의 언니이자 포르투갈의 왕비였던 이사벨이 아들을 낳고 사망하므로써 끝나게 됩니다. 마리아는 포르투갈과의 관계를 위해 형부였던 마누엘 1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둘의 결혼은 1500년 10월에 치뤄지는데 이해 7월에는 마리아의 조카이자 마누엘의 아들이었으며 가톨릭 공동군주의 후계자였던 미구엘 데 파스가 어린나이로 사망했었습니다.
마누엘 1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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