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후아나 이야기가 길군요..
하긴 후아나가 여왕이긴했잖아요... 실권이 없어서 그렇지..
에스파냐의 인판타들...(6) 인판타 후아나 : 가톨릭 공동 군주의 딸(세번째)
인판타 후아나
카스티야와 레온, 아라곤의 여왕
에스파냐의 여왕
"후아나 라 로카"
Joanna (6 November 1479 – 12 April 1555),
Joanna the Mad (Spanish: Juana la Loca)
아이들과 함께 있는 후아나
1506년 7월 필립은 아내인 후아나와 함께 코르테스의 승인을 얻어 카스티야와 레온의 국왕이 됩니다. 그리고 둘의 아들인 카를로스(카를)이 후계자로 선포가 되죠. 이미 아내의 상태가 통치자로써의 능력이 없다고 확인받았었기에 필립은 실질적인 카스티야의 통치자가 됩니다만 이 상황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겨우 두달후인 1506년 9월 필립은 장티푸스로 사망하죠. 갑작스러운 필립의 사망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는데 일단 사위에게 불만 가득했던 후아나의 아버지 페르난도 2세가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후아나는 이때 임신중이었는데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것은 큰 충격이었죠.
죽은 남편 곁에 있는 후아나
후대의 그림
후아나는 스스로 통치하려했습니다만 나라의 상황은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후아나의 후계자였던 카를은 겨우 여섯살로 고모인 마르가레테의 보호아래 플랑드르에 있었죠. 카스티야 귀족들은 후아나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앗고 후아나의 아버지인 페르난도는 권력을 잡기 위해 이런 상황을 수수방관했습니다. 결국 카스티야 귀족들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후아나의 아버지인 페르난도에게 와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하게 됩니다.
페르난도가 돌아오자 다시 나라가 안정되었는데 페르난도는 딸을 배제하고 자신이 단독으로 카스티야와 레온을 통치하길 원합니다. 후아나는 자신이 여왕이기에 이 상황을 거절했지만 결국 아버지가 권력을 잡는것을 승인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페르난도는 후아나의 권력을 뺏은뒤 딸을 수녀원으로 보냈고 딸이 믿을만한 주변 인물들 역시 쫓아버렸죠. 이런 상황에 대해서 아마 후아나는 힘들어했을 것이며 이때문에 후아나는 "후아나 라로카(미친 후아나)"라고 알려지게 되는 행동들을 했을듯합니다. 이때 그녀는 남편의 시신이 담긴 관과 항상 함께 했었다하죠.
남편의 시신과 함께 있는 후아나
역시나 후대의 그림
후아나의 아버지인 페르난도 2세는 두번재 결혼으로 후계자를 얻지 못했으며 결국 후아나와 그녀의 후손들을 아라곤의 계승자로 승인해야했습니다. 페르난도 2세는 플랑드르에서 성장한 외손자인 카를보다 카스티야에서 성장한 외손자인 페르난도를 더 예뻐했으며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페르난도 2세는 외국인으로 성장한 손자 카를보다 자신의 이름을 땄으며 카스티야에서 성장한 페르난도가 훨씬더 왕위를 물려받기 적당하다고 여겼던듯합니다. 하지만 페르난도 2세가 사망한뒤 왕위는 카를(카를로스)에게 돌아가게 되죠. 후아나는 아버지가 죽은뒤 아버지로부터 아라곤을 물려받아서 후아나는 에스파냐의 첫 군주가 됩니다. 물론 아들인 카를로스와 함께 공동국왕으로 즉위해야했지만 말입니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후아나에게는 실권이 없었습니다.1516년 페르난도 2세가 사망하면서 아라곤과 카스티야는 각각 두명의 섭정에 의해서 통치되었습니다. 그리고 1517년 17살의 카를로스가 누나와 함께 에스파냐로 오죠. 그는 어머니와 함께 공동군주가 됩니다. 명목상 그의 어머니인 후아나가 더 높은 지위에 있었습니다만 실권은 카를로스에게 있었죠. 1519년에는 카를로스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당선되죠
후아나의 아들
카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에스파냐의 국왕
1520년 카스티야에서는 반란이 일어납니다. 정당한 여왕인 후아나에게 실권을 부여하라는 것이 반란을 일으킨 원인중 하나였습니다. 후아나는 왕권의 안정을 위해 반란자들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동정적이긴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인 카를로스는 이들을 무력진압했죠. 이후 카를로스는 어머니를 수녀원으로 보내서 그곳에 연금상태로 둡니다. 이런 상황은 후아나의 우울증을 극대화 시킨것으로 추정되는데 후아나는 수녀들이 자신을 암살할것이라고 여겨서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었다고 합니다.
후아나는 1555년 살고 있던 수녀원에서 사망합니다.
후아나의 정신상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녀가 우울증등을 앓았다고 추정합니다. 그녀의 정신 질환은 외할머니인 포르투갈의 이사벨로부터 물려받은 가족 질환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후아나의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아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그녀의 병을 과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후아나
후아나는 필립과의 사이에서 여섯아이를 낳았습니다. 큰딸인 레오노르는 포르투갈의 왕비였다가 후에 프랑스의 왕비가 되는 인물이었죠. 둘째는 아들인 카를(카를로스)로 할아버지로부터 오스트리아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위를, 아버지로부터 부르고뉴 공작 지위를, 어머니로부터 에스파냐 국왕 지위를 물려받아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던 인물입니다.하지만 그는 오스트리아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위는 동생인 페르난도에게 물려주고 에스파냐 국왕지위는 아들인 펠리페 2세에게 물려줬습니다. 셋째는 딸인 이사벨(엘리자베트)로 칼마르 동맹시절의 국왕이었던 덴마크의 크리스티안2세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넷째는 아들인 페르난도(페르디난트)로 형에게 오스트리아쪽을 물려받아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가문을 형성하죠. 다섯째는 딸인 마리로 헝가리의 국왕인 라요시 2세와 결혼했었습니다. 아이없이 남편이 전사한뒤 그녀는 플랑드르의 총독으로 일했었습니다. 여섯째는 카타리나로 이모인 잉글랜드의 캐서린 왕비의 이름을 딴것이었죠. 그녀는 유복자로 태어났는데 정신상태가 불안정했던 어머니와 함께 지냈었다고 합니다. 이후 포르투갈의 왕비가 됩니다.
후아나의 여섯자녀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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