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32)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 : 헝가리-팔라틴 요제프대공의 딸

엘아라 2015. 5. 2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은 딸들할때 너무 많이 해서 너무 익숙한듯해요.-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32)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 : 헝가리-팔라틴 요제프대공의 딸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마리아 여대공

오스트리아의 대공비

Elisabeth Franziska Maria, 

Archduchess of Austria, 

Princess of Hungary and Bohemia 

(17 January 1831 – 14 February 1903)



리자베트 프란치스카 마리아 여대공은 1831년 헝가리의 부다에서 헝가리의 팔라틴인 요제프 대공과 그의 세번째 부인인 뷔르템베르크의 마리아 도로테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그녀의 아버지인 요제프 대공은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아들로 아버지인 황제에 의해서 헝가리 팔라틴 지위를 부여받았었습니다.그녀의 어머니인 뷔르템베르크의 마리아 도로테아는 뷔르템베르크 국왕의 조카로 그녀의 남동생인 알렉산더는 귀천상혼했는데 그가 바로 영국의 메리 왕비의 할아버지이기도 했었습니다.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의 부모

요제프 대공과 뷔르템베르크의 마리아 도로테아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은 매우 아름다웠다고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그녀는 16살에 합스부르크가문의 또다른 분가인 오스트리아 에스테 가문으로 시집가게 됩니다. 1847년 빈에서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는 모데나 공작 프란체스코 4세의 아들이자 오스트리아 군인이었던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과 결혼했었죠. 둘사이에서는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태어납니다만, 딸이 태어난 그해 말 1849년 대공은 사망하게 됩니다.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의 첫번째 남편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


겨우 18살에 과부가 된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은 서둘러 재혼해야했는데 이것은 정치적 문제가 연루되었다고 합니다. 황제의 어머니였던 조피 대공비는 황제또래였던 여대공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황제가 아름다운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에게 관심을 가질까봐 걱정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헝가리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대공비는 헝가리를 경계했으며 이때문에 여대공을 좋게 보지 않았던 것이죠. (물론 과부였다는 점도 있을듯은합니다.) 1854년 23살의 여대공은 사촌인 카를 페르디난트 대공과 재혼하게 됩니다. 카를 페르디난트 대공은 테센 공작의 아들로 여대공의 아버지는 테센공작의 동생이었죠.

둘의 결혼은 매우 행복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둘사이에서는 모두 여섯아이가 태어났으며 그중 넷이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여대공의 첫번째 결혼으로 태어난 마리아 테레지아 역시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이 키웠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의 두번째 남편

카를 페르디난트 대공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의 큰딸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왕자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었습니다. 후에 루드비히 왕자는  바이에른의 마지막 국왕이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는 바이에른의 왕비가 됩니다. 둘째딸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대공은 바로 에스파냐의 국왕 알폰소 12세와 결혼해서 알폰소 13세의 어머니가 되었었습니다. 그녀의 아들인 프리드리히는 백부의 뒤를 이어서 테센 공작이 되었죠.(...유명한 이자벨라 대공비 남편-0-;;)


두 딸과 아들 부부와 함께 있는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

왼쪽이 바이에른의 왕비가 되는 마리아 테레지아이고 오른쪽이 에스파냐 왕비가 되는 마리아 크리스티나입니다. 뒤에 있는 남녀는 아들 부부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