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34)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헨리에타 : 벨기에의 왕비(두번째)

엘아라 2015. 6.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여대공들 다해가는데도 아직 다음에 뭘할지 결정을 못했습니다.


일단 에스파냐 합스부르크를 볼까 싶긴합니다. (사실 이쪽이 본가이긴합니다)

그리고 제국 이전의 합스부르크가문을 볼까 싶은데 문제는 에스파냐를 저렇게 중간에 하면 나중에 에스파냐 인판타들 볼때 난감해진다는 거죠.

...ㅎㅎㅎㅎ 아니 좋은건가.... 글쓸거 없을때 다시 적당히 쓰면 되니까요..-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34)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헨리에타 : 벨기에의 왕비(두번째)




오스트리아의 마리 헨리에테

벨기에의 마리 앙리에트 왕비

Marie Henriette of Austria 

(Marie Henriette Anne)

(23 August 1836 – 19 September 1902) 


마리 앙리에트는 벨기에에서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활달한 성격이었던 그녀와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남편은 서로 맞지 않았으며 예술을 사랑했었던 마리 앙리에트와는 달리 레오폴은 예술에는 관심이 없었었죠. 둘은 자주 떨어져 지냈고 이런 상황은 레오폴이 아내 이외의 여성에게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그리고 또이런 연애질은 마리 앙리에트가 남편과 다시 멀어지는 악순환을 만들었을것이라 생각되구요.


후계자를 낳는것은 왕가의 후계자들의 의무이기도 했었습니다. 사이가 나빴어도 아이들을 낳아야하는 것은 의무였죠. 마리 앙리에트는 결혼 5년만에 첫아이인 마리 루이즈를 낳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후계자가 될 아들 필립을 낳죠. 그리고 필립이 태어난 5년후에 딸인 스테파니를 낳습니다. 하지만 1869년 아들이자 후계자인 필립이 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부부사이가 극히 나빴었기에 레오폴은 아들의 죽음에 대해 아내를 비난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둘사이에서는 다시 후계자를 낳을 필요성이 있었죠. 그리고 태어난 아이가 클레망틴이었습니다. 클레망틴이 태어났을때 레오폴의 실망은 매우 컸으며 부부사이는 이로써 끝났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아들 필립과 함께 있는 마리 앙리에트


마리 앙리에트는 1865년 시아버지가 죽은뒤 벨기에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술을 후원했고 평생 사랑한 승마에 열중했으며 말들을 돌보는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 앙리에트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엄격하다 못해 냉정한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이들을 "싫은 남자의 아이들"이라고 여겼었기에 그랬을듯한데, 아이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매우 혹독한 벌을 내렸으며 아이들보다 자신의 헝가리 말들을 더 사랑했다고 이야기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던 레오폴 2세가 딸들을 불쌍하게 여길정도였죠. 언니들이 다 시집가고 어머니와 둘이서 지내야했던 클레망틴에게 레오폴 2세는 어느정도 나이가 됐을때 어머니 없이도 여행다닐수 있게 허락해줄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리 앙리에트

빈터할터 그림


비록 사이가 나빴지만 마리 앙리에트와 레오폴 2세는 자녀들의 결혼에는 어느정도 신경을 쓰게 됩니다. 둘은 자녀들을 결혼잘 시키려고 노력했었죠. 큰딸인 마리 루이즈는 작센-코부르크-코하리의 필립과 결혼했습니다. 그는 벨기에 왕가와도 한가문이었지만 마리 앙리에트는 그가 헝가리와 연결된것에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필립의 할머니가 헝가리의 귀족가문이었던 코하리 가문의 상속녀였으며 이때문에 이 가문은 헝가리에 영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딸인 스테파니는 오스트리아 황태자인 루돌프와 결혼했었습니다.


하지만 두 딸의 결혼은 불행으로 끝났는데, 큰딸인 마리 루이즈는 여러 연애사건끝에 1897년 남자와 함께 야반도주했다가 잡혔고  정신병원에 강제로 들어갔고 결국 1906년 이혼했었죠. 둘째딸인 스테파니는 과부가 되었으며 1900년 신분이 낮은 남자와 결혼했고 이런 상황은 부모가 두 딸을 더이상 보려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합니다.



루이즈와 스테파니


마리 앙리에트는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1895년 궁정에서 은퇴해버립니다. 어머니가 은퇴하므로써 막내딸인 클레망틴은 어머니를 대신해서 궁정의 최고 여성으로 궁정에서 일해야했다고 합니다.(하지만 엄마랑 지내는것보다 행복했을듯..--;;) 마리 앙리에트는 한 온천에서 지내면서 가족들 대부분과도 만나지 않고 살앗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연락을 하면서 살았던 가족은 숙부인 요한 대공과 그의 귀천상혼한 아내인 안나 플로흘이었다고 합니다


마리 앙리에트는 1902년 66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녀의 남편인 레오폴 2세는 이때 이미 카롤린 라크루아를 만난 상태였으며 아내가 죽은뒤로는 대놓고 그녀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마리 앙리에트

벨기에의 왕비

그녀는 자녀들에게 정이 없었는데 차라리 키우던 헝가리산 말을 자녀들보다 더 아꼈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헝가리어 포함)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