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세편으로 못끝낼수도 있을것같습니다..ㅠ.ㅠ
[Isabel] 아라곤과 시칠리의 페르난도 2세 (두번째)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
시칠리의 국왕
에스파냐의 공동 국왕
Ferdinand II
(10 March 1452 – 23 January 1516),
페르난도의 정치적 삶은 어린시절부터 시작됩니다. 그시대 이베리아 반도는 매우 복잡한 왕위계승과 귀족들과의 투쟁관계에 있었으며 페르난도 역시 여기에 휘말리게 됩니다.
페르난도의 아버지인 후안은 나바라 여왕의 남편으로 공동통치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죽은뒤 아들인 카를로스와 정치적 투쟁을 하게 됩니다. 후안은 아들을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결국 이런 상황은 카를로스가 아버지인 후안과 내전을 하게 만들었죠. 결국 승기를 잡은 쪽은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카를로스가 아니라 후안이었죠. 결국 카를로스는 패배해서 갇히게 되었고 후안은 아들대신 정당한 나바라의 통치자가 되었으며 대신 카를로스는 후안이 죽고 난뒤에 아버지의 뒤를 잇기로 하게 되죠. 그리고 후안은 형인 알폰소의 뒤를 이어 아라곤의 국왕이 됩니다. 물론 카를로스는 아버지의 후계자로 인정이 됩니다. 하지만 1461년 카를로스가 사망하게 되면서 좀더 상황이 복잡하게 됩니다.
페르난도의 아버지
아라곤의 후안 2세
그의 나바라 통치권은 아내를 통한것이어서 아들인 비아나 공 카를로스에게 정당한 계승권이 있었습니다만 후안은 트집을 잡아서 아들에게 통치권을 넘기지 않으려했었습니다.
이전에 카탈루냐 지방은 후안 2세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커지는 왕권에 위험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카를로스를 지지하고 후안을 반대하던 세력들을 집결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1462년부터 10여년간의 내전상태로 접어들게 됩니다. 내전이 오래갈수 있었던 이유는 아라곤과 나바라를 견제하던 프랑스의 관여로 인해서 내전이 길어지게 된것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후안은 자신의 유일한 남성 후계자였던 페르난도의 지위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후안2세는 페르난도에 여러가지 지위를 부여하는데 1462년에는 카탈루냐 총 사령관 지위를 부여했었죠. 이런 상황에서 페르난도 역시 어린시절부터 지휘관으로 내전에 참전하게 되었으며 10대 시절을 이런 전쟁과 복잡한 정치상황에 대처하도록 교육받게 됩니다.
카탈루냐의 코르테스
코르테스는 대충 귀족들을 중심으로하는 최고 의결기관쯤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카탈루냐 귀족들은 후안2세에 반대해서 결국 카탈루냐의 내전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후안 2세는 프랑스와 우호적이었던 카스티야가 관여할것을 우려했었던듯합니다. 그때문에 카스티야의 엔리케 4세의 이복여동생이었던 이사벨과 페르난도와의 결혼을 제안했었죠. 물론 엔리케는 이 제안을 승락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카스티야의 상황 역시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특히 이사벨의 남동생이자 왕위계승자였던 아스투리아스 공 알폰소가 1468년 사망하면서 상황은 더 급하게 돌아가게 되죠. 이제 왕위계승자가 된 이사벨은 페르난도가 적합한 남편감으로 여겼으며 후안 2세 역시 이런 상황을 환영하게됩니다. 이사벨의 오빠인 엔리케4세는 페르난도와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후안측과 이사벨측은 결혼협상을 진행하게 되죠. 아마후안 2세가 아들인 페르난도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아라곤의 왕위계승자가 이어받게 되는 시칠리 왕국의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었던듯합니다. 페르난도는 1468년 아버지로부터 시칠리의 왕위를 물려받아 시칠리의 국왕 지위를 받게 됩니다.
아라곤-시칠리 국왕의 문장
결국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결혼은 단순히 이사벨의 필요뿐만 아니라 프랑스 세력과 프랑스와 우호적이던 카스티야를 견제해야했던 아라곤 역시 필요했었던 결혼 동맹이었던 것입니다.
1469년 시칠리의 국왕이자 아라곤의 왕위계승자였던 페르난도는 카스티야의 왕위계승자인 아스투리아스 여공 이사벨과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는데 교황은 이 결혼을 반대했으며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해서 결혼해야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 다음해에 첫아이인 이사벨이 태어나죠.
페르난도와 이사벨
아마 페르난도는 1472년 카탈루냐 내전이 끝날때까지 자주 아내곁을 떠나야했을듯합니다. 비록 카스티야에서 이사벨과 엔리케 4세 사이에 긴장이 심해지고 있긴 했지만 표면적으로는 평화상황이었죠. 반면 카탈루냐는 내전중이었고 그는 이 내전에 참전해야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비록 내전은 1472년 끝나게 되지만 페르난도는 프랑스와의 투쟁을 계속 이어갔으며 자주 전장에 있어야했을듯합니다.
그리고 1474년 운명의 시간이 오죠. 카스티야의 엔리케 4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내인 이사벨이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한번 카스티야 왕위계승전쟁을 불러오게 됩니다.
페르난도의 아내
카스티야와 레온의 여왕 이사벨 1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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