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마지막이네요.
이사벨 하고 나서 페르난도 하고 다음으로는 오빠인 엔리케4세,올케인 포르투갈의 후아나 하고 다음으로 엄마인 포르투갈의 이사벨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나서 조카인 후아나랑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 하고 나서 다음으로 골치아픈 신하들 이야기하려합니다.-0-;;;(이거 언제 다 할수 있을까요..-0-;;)
[Isabel]카스티야와 레온의 이사벨 1세(여섯번째)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
카스티야와 레온의 여왕
에스파냐의 공동군주
Isabella I
(Isabel, Ysabel)
(22 April 1451 – 26 November 1504)
왠지 미화버전을 넣고 싶음-0-;;;
이사벨은 키는 크지 않았지만 매우 꼿꼿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던 여성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그녀가 "여왕"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고개를 들고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이사벨은 붉은기가 도는 금발머리색이었으며, 나름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사벨의 외모는 딸인 후아나와 카타리나가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하지만 제 눈에는 괜찮은 외모는 아닌...--;;왠지 빅토리아 여왕이랑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렇다죠.-0-;;뭐 빅토리아 여왕도 젊은 시절에는 "요정"같았다고 하니까 믿어야겠죠.-0-;;)
이사벨은 매우 신앙심이 깊었으며, 이슬람왕조에 대해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당시 이베리아 반도의 왕족들처럼 그녀 역시 이슬람에 영향을 받은 장식이나 생활방식을 유지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사벨
....보면 볼수록 후아나나 카타리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사벨과 페르난도 사이에서는 모두 일곱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그중 두명은 사산되었기에 총 다섯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중 넷이 딸이었죠.
성모와 함께 있는 가톨릭 군주들
왼쪽은 페르난도와 아들 후안, 오른쪽은 이사벨과 딸인 이사벨
첫째는 딸이자 어머니의 이름을 딴 이사벨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아직 아스투리아스 여공일때 태어났으며 후에 엔리케 4세가 사망한뒤 어머니가 여왕으로 선포된뒤 이사벨 역시 "아스투리아스 여공"으로 선포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처럼 신앙심이 깊었던 이사벨은 포르투갈의 왕위계승자였던 아폰수와 결혼했었는데 둘은 곧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폰수는 사고로 사망했고 이사벨은 과부가 되었죠. 남편이 죽은뒤 친정으로 돌아온 이사벨은 다시한번 포르투갈로 가게 됩니다. 포르투갈의 국왕인 마누엘 2세가 이사벨과 결혼하길 원했었죠. 결국 이사벨은 그와 결혼합니다만 결혼 다음해인 1498년 아들인 미구엘을 낳고 사망합니다. 미구엘은 외삼촌인 후안이 죽은뒤 태어났기에 어머니 이사벨의 뒤를 이어 카스티야의 왕위계승자이기도 햇었습니다만 미구엘 역시 1500년 사망했습니다.
이사벨
아스투리아스 여공
포르투갈의 왕비
둘째는 아들인 후안이었습니다. 그는 카스티야와 레온, 아라곤의 왕위계승자로 태어났죠. 왕위계승자로 "아스투리아스 공"칭호를 가지고 있었던 후안은 이사벨이 너무나 사랑한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할아버지였던 아라곤의 후안 2세 역시 손자의 교육에 신경썼는데 손자를 아라곤에서 키우려했었다고 합니다만 이사벨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사벨은 아들의 교육에 매우 신경을 썼으며 또래 여러 귀족들과 어울리도록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후안은 1496년 합스부르크의 마르가레테와 결혼합니다. 그녀는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 드 부르고뉴의 딸로 후안의 여동생인 후아나는 마르가레테의 오빠인 필립과 결혼했었죠. 정략결혼이었음에도 후안은 마르가레테와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1497년 후안은 갑작스럽게 사망햇으며 임신중이었던 마르가레테 역시 딸을 사산했다고 합니다.
후안
아스투리아스 공
셋째는 딸인 후아나였습니다. 그녀는 "후아나 라 로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죠. 정략결혼으로 올케의 오빠인 부르고뉴 공작인 필립과 결혼합니다. 후아나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필립은 정략결혼으로만 아내를 생각했었고 이런 상황은 후아나가 필립의 주변 여성들에게 질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죠. 후아나는 필립과의 사이에서 여섯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어머니와 남편이 죽은 뒤 까지 생존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그녀의 남편과 아들인 카를이 카스티야 왕위를 두고 후아나의 아버지인 페르난도와 다투면서 후아나는 그냥 왕권을 가져다 주는 존재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게 만들었는데 이런 상황은 후아나의 정신적 문제(아마도 우울증이 있거나 분노조절 장애 같은것이 있었을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합니다.)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에스파냐의 왕위는 후아나의 아들인 카를이 이어받았으며, 후아나의 다른 아들인 페르디난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죠.
후아나
어린시절
필립과 후아나
넷째는 딸인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그녀의 쌍둥이 자매는 사산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언니인 후아나와 가장 친한 자매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마리아는 큰언니인 이사벨의 남편이었던 포르투갈의 마누엘 2세와 1500년 정략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둘사이에는 모두 10명의 자녀가 태어났죠. 그녀는 남편보다 미리 사망했는데 그녀가 죽고 난뒤 포르투갈의 마누엘 2세는 다시한번 에스파냐의 인판타와 결혼합니다. 마리아의 조카였던 합스부르크의 레오노르였죠.
마리아
다섯째이자 막내는 딸인 카타리나입니다. 그녀가 바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헨리 8세의 첫번째 아내인 캐서린 왕비입니다. 그녀 역시 정략결혼으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인 아서와 결혼했는데 남편이 일찍 죽고난뒤 헨리 7세는 카타리나의 지참금을 되돌려주길 거부하고 결국 둘째아들인 헨리와 결혼시키게 됩니다. 이 상황은 훗날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 이혼할때 "형과 결혼했기 때문에 결혼이 무효이다"라고 주장하게 된 계기가 됩니다.(하지만 헨리 7세가 헨리 8세랑 캐서린이랑 결혼시킬때 이부분을 이미 해결했었기에 헨리 8세의 주장은 좀..--;;;;)
카타리나
어린시절
캐서린 왕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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