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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 카스티야와 레온의 이사벨 1세 (첫번째)

엘아라 2015. 3. 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사벨보고 필받았으니 이사벨에 나오는 인물들 소개를 좀해야겠습니다.

ㅎㅎㅎ 네 사실 나폴레옹 장군들 이야기 읽기 싫어서 이러는거예요..ㅠ.ㅠ


여기도 족보가 꼬여서 족보좀 그려야할판이긴합니다만..

대충 카스티야-포르투갈-아라곤 순으로 왕족들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신하들 이야기하면 될듯합니다.

시즌 1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나중에 자녀들이야기로 넘어가면서 그쪽에 다시 연결로 이야기하면 될듯합니다.(그런데 캐서린은 영국 왕비 할때 할텐데 말입니다.-0-;;;)


[Isabel] 카스티야와 레온의 이사벨 1세 (첫번째)


에스파냐는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였던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두 군주였던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결혼하면서 둘의 후손들에게 둘의 영지가 물려지게 되면서 생긴 나라입니다. 사실 이 상황은 좀 복잡하게 합스부르크가문으로 이어지게 되긴한데, 어쨌든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결혼한뒤 그라나다를 함락시키므로써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의 영역을 차지하게 되면서 나라가 통일 국가 "에스파냐"의 느낌이 나게 되는것이었죠.


에스파냐 드라마인 이사벨은 이 두명중 카스티야의 여왕이었던 이사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사벨의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합니다.



스티야의 이사벨 1세

카스티야와 레온의 여왕

에스파냐의 공동군주

Isabella I 

(IsabelYsabel)

(22 April 1451 – 26 November 1504),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는 카스티야의 국왕이었던 후안2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포르투갈의 이사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가계는 이베리아 반도 다른 왕가들고 혈연적으로 엮여있었을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의 랭카스터 공작의 후손이기도 했었습니다.

이사벨의 아버지인 후안2세는 카스티야의 엔리케 3세와 그의 부인인 랭카스터의 캐서린의 아들이었습니다. 랭카스터의 캐서린이 바로 랭카스터 공작인 곤트의 존과 그의 두번째 부인인 카스티야의 콘스탄사의 딸이었습니다. 이사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카스티야의 내전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 결혼한것이었죠. 하지만 이런 분열 상황은 이사벨때까지도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던듯합니다. (카스티야 내전상황은 나중에 설명하던가 말던가하죠.)

이사벨의 어머니인 포르투갈의 이사벨은 포르투갈의 왕자이자 수상이었던 주앙과 그의 부인이었던 이사벨 데 바르셀로스(이사벨 데 브라간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포르투갈의 주앙은 포르투갈의 국왕이었던 주앙 1세와 그의 왕비였던 랭카스터의 필리파의 막내아들이었죠. 랭카스터의 필리파는 랭카스터 공작인 곤트의 존과 그의 첫번째 부인인 랭카스터의 블랜치의 장녀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계로 이사벨은 모계로도 부계로도 랭카스터 공작의 후손이기도 했었죠.



이복동생이자 적자였던 페드로를 살해하는 엔리케2세

그리고 페드로의 두딸들인 콘스탄사와 카타리나는 잉글랜드 왕자들과 결혼했고 엔리케2세의 후계자였던 후안 1세와 왕위계승권을 다투게 됩니다. 콘스탄사의 남편이었던 랭카스터공작은 한동안 카스티야 왕위를 주장했었지만 결국 후안1세의 후계자였던 엔리케 3세와 랭카스터의 캐서린이 결혼하면서 마무리됩니다.(엔리케 3세와 랭카스터의 캐서린이 이사벨의 조부모)  

....이렇게 마성의 이베리아 반도로 빠져드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ㅠ.ㅠ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

이사벨은 부계로도, 모계로도 모두 이 랭카스터 공작의 후손입니다.



이사벨의 아버지인 후안 2세는 두번 결혼했는데 첫번째는 아라곤의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후안의 숙부이자 외가쪽으로부터 아라곤과 아라곤 왕국의 여러 영지들(이탈리아쪽 왕국들)을 이어받은 아라곤의 페르난도 1세의 딸이었습니다. (--;아라곤 왕국의 국왕은 카스티야 가문이고,페르난도의 손자인 페르난도 2세와 후안2세의 딸인 이사벨이 결혼...-0-;;; 여기 완전 꼬인족보) 둘사이에서는 여러 자녀들이 태어나는데 성인으로 성장하는 자녀는 이사벨의 이복오빠인 엔리케밖에 없었습니다.



Juan II de Castilla-Plaza Mayor de Salamanca

이사벨의 아버지

카스티야의 후안2세


이사벨의 아버지인 후안은 첫번째 아내가 죽은뒤 포르투갈의 공주였던 이사벨과 결혼해서 딸인 이사벨과 아들인 알폰소를 낳게 되죠. 후안 2세의 두번째 부인이자 이사벨 1세의 어머니였던 포르투갈의 이사벨은 궁정 스캔들에 연루되었는데 그녀는 호감을 가졌던 귀족이자 국왕의 총신을 살해하도록 방조했고 그 결과 죄책감등으로 인해서 우울증에 시달렸고 "미쳤다"라고 알려지게 됩니다. (이는 후에 이사벨의 딸인 후아나의 행동에 대해서 가족력으로 치부하는 결과를 낳게 되기도 합니다.)



이사벨의 어머니

포르투갈의 이사벨


후안2세의 장남인 엔리케와 후안 2세의 새아내인 이사벨은 나이차가 세살로 엔리케가 나이가 더 많았었습니다. 이사벨이 태어났을때 엔리케는 26살로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사벨이 태어난 2년뒤에는 남동생인 알폰소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그 1년뒤인 1554년 이사벨의 아버지인 후안 2세가 사망했고 이사벨의 이복오빠인 엔리케가 엔리케 4세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사벨의 이복오빠

카스티야의 엔리케 4세


엔리케 4세가 즉위하면서 포르투갈의 이사벨과 그녀의 두 아이는 엔리케의 궁정을 떠나 아레발로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후안 2세는 어린 두 자녀가 편안히 살수 있도록 재산을 물려줬지만, 엔리케 4세는 아버지의 유언을지키지 않았죠. 이때문에 포르투갈의 이사벨과 두아이들은 아레발로에서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미 국왕이 살아있었을때부터 우울증에 시달렸던 포르투갈의 이사벨은 이곳에서 더욱더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이사벨은 두  자녀의 교육은 소홀히하지 않았으며, 이사벨은 교육을 잘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은 이사벨이 신앙심이 깊으며 다른 어려운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을듯합니다. 이미 이시기에 이사벨은 자비심이 깊다고 알려졌었다고 합니다.



두 자녀인 알폰소와 이사벨과 함께 있는 포르투갈의 이사벨



하지만 엔리케 4세의 아내였던 포르투갈의 후아나가 딸인 후아나를 낳으면서 이사벨과 동생인 알폰소는 엔리케의 궁정으로 가게 됩니다. 이것은 좀 복잡한 문제였는데 궁정에서는 후아나가 엔리케의 딸이 아니라 국왕의 총신이었던 알부르케르케 공작인 벨트란 드 라 쿠에바의 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엔리케 4세는 자신의 딸을 왕위계승자로 선언하지만 귀족들은 이에 반발하는 무리들이 생겼으며 이런 상황은 엔리케의 왕권을 위협했으며 왕위계승권리를 가지고 있던 두 동생들을 궁정으로 부르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이사벨은 왕비이자 올케였던 포르투갈의 후아나의 보호아래 있었으며 동생인 알폰소는 가정교사의 손에 자라게 되죠. 

엔리케의 궁정이 있던 세고비아에서 있었던 이사벨은 어느정도 인질과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세고비아 성을 떠날수가 없었죠. 하지만 그녀는 국왕의 여동생이었으며 왕위계승권을 가진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편안한 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또 교육도 계속 지속되어서 읽고,쓰기와 수학,예술,체스,종교 등등 당대 기준으로는 매우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엔리케는 여동생이 복잡한 정치에 끼어들길 원치 않았던듯합니다. 하지만 이사벨의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의 후아나

그녀는 자신의 딸인 카스티야의 후아나를 왕위계승자로 승인받게하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이사벨의 삶은 그냥 평범한 중세의 여성 왕족으로써의 삶이었을듯합니다. 오빠나 남동생의 뜻에 의해서 자신의 삶이 결정되는 그런 삶이었죠. 하지만 카스티야의 권력투쟁은 이사벨의 삶을 바꿔놓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