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바람둥이 앙리 4세라 여자랑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지....-0-;;;
정부들과 그 후손들...(37) 자퀘린 드 붸일 : 앙리 4세의 정부
자퀘린 드 붸일
모레트 백작부인(여백작)
Jacqueline de Bueil,
1588-1651
자퀘린 드 붸일은 1588년 쿠르시용의 영주였던 클로드 드 붸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앙리 4세의 장군들중 한명이었던 장 7세 드 붸일의 조카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그녀가 궁정에 소개된 것은 장 7세의 영향력이었을듯합니다. 붸일 가문은 오래된 군인 가문이었습니다만 자클린은 그다지 부유하거나 궁정을 출입할만한 높은 신분은 아니었던듯 합니다.
붸일 가문의 문장
1604년경 아마도 앙리 4세의 정부가 되었던듯합니다. 그의 공식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궁정을 출입할수 있는 지위가 필요했고 이때문에 앙리 4세는 자퀘린을 그런 지위로 만들어줄만한 신랑감을 찾게 됩니다. 세시 백작이었던 필리프 드 아를레 드 샹발롱이었죠. 자퀘린과 세시 백작은 1604년 10월 5일 새벽 6시에 결혼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서둘러 결혼한것은 그녀가 궁정 지위를 얻기 위해서 세시 백작과 결혼했었기 때문이었죠. 결혼 직후 국왕은 신랑에게 신부를 떠나라고 명령을 내렸으며 둘은 별거상태로 살다가 결국 1607년 정식으로 이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앙리는 1605년 자퀘린에게 모레트 백작부인 지위와 함께 많은 재산도 부여해주게 됩니다.
자퀘린은 앙리 4세의 정부였던 마담 드 베르누이를 견제하기 위해 궁정에 들어왔었습니다 .이때쯤 마담 드 베르누이는 국왕의 눈밖에 난 상황으로 궁정에서 추방당해서 잠시 베르누이 영지에 가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몇몇 여성들이 마담 드 베르누이를 밀어내기 위해서 자퀘린을 후원했었죠. 자퀘린은 1607년 앙리 4세의 아들인 앙투안 드 붸일을 낳습니다.
자퀘린과 앙리 4세의 아들
앙투안
앙리 4세의 왕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는 처음에 마담 드 베르누이가 추방당해서 기뻐했지만 곧 앙리가 다른 여성을 정부로 들인것에 대해서 매우 화를 내게 됩니다. 그녀는 결국 마담 드 베르누이가 사라져도 다른 여성이 대신할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게다가 그녀가 아이를 낳을때면 늘 앙리의 정부들도 아이를 낳았기에 더 열받았을듯합니다.
자퀘린은 궁정에 있는 동안 다른 남성들과 연애사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특히 슈브르즈 공작인 클로드 드 로렌은 자퀘린과 결혼하고 싶어했는데 앙리 4세가 이 사실을 알고 그녀가 그와 결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합니다. (슈브르즈 공작은 자퀘린과 결혼해서 궁정에서 은퇴하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슈브르즈 공작
클로드 드 로렌
앙리 4세가 암살당한뒤, 1617년 자퀘린은 친척이었던 발데스 후작 르네 뒤 베크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두아들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자퀘린과 앙리 4세의 아들인 앙투안 드 부르봉-붸일은 20대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1.http://favoritesroyales.canalblog.com/archives/2011/05/25/21222872.html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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