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자료없는 가브리엘 안젤리크를 하는 이유는 초상화를 찾아서입니다.-0-;;;
정부들과 그 후손들...(36)가브리엘 안젤리크 드 부르봉 : 카트린 앙리에트 드 발자크 당트레그의 딸
가브리엘 안젤리크 드 부르봉
마드무아젤 드 베르누이
Gabrielle Angelique
Mademoiselle de Verneuil
(1603-1627)
가브리엘 안젤리크 드 부르봉은 앙리 4세와 그의 정부였던 마담 드 베르누이의 딸로 1603년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 앙리 4세의 적자로 인정받았는데 이때 그녀의 오빠였던 가스통 앙리 역시 적자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어린시절은 아마도 불안정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아버지인 앙리 4세는 1610년에 암살당했으며 이전에 그녀의 어머니인 마담 드 베르누이는 국왕의 눈밖에 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국왕의 적자로 인정되었기에 어느정도 지위는 유지했었던듯합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지위에 따라서 "마드무아젤 드 베르누이"라고 불렸었다고 합니다.
마담 드 베르누이
1622년 가브리엘 안젤리크는 군인이었던 베르나르 드 노가레 드 라발레트와 결혼합니다. 베르나르의 아버지인 에페르농 공작은 유능한 군인으로 에페르농 공작 칭호를 받은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가브리엘 안젤리크와 베르나르의 결혼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을듯합니다. 국왕의 이복여동생이자 앙리 4세의 적자로 인정된 가브리엘 안젤리크와 결혼하는 것이 아무래도 궁정에서 지위를 유지하는것에 유리했을테니까요.
하지만 이 결혼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는데 베르나르는 기본적으로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가브리엘 안젤리크에게 함부로 대했으며 공개적으로 아내를 때리기까지했다고 합니다.
이 결혼으로 딸과 아들이 각각 한명씩 태어났지만 아들이 태어난 10일 뒤에 가브리엘 안젤리크는 사망합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녀의 남편이 평소에 그녀에게 잔인하게 대했던것과 연결되는듯한데 정확한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보통 산후에 여성들이 죽는것은 흔한 일이었기에 아마도 산후가 나빠서 사망했을수도 있을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르나르 드 노가레 드 라발레트
그는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에페르농 공작이 됩니다만 그의 아들은 그보다 먼저 죽었고 손자도 없었기에 공작 지위는 사촌에게 물려지게 됩니다.
가브리엘 안젤리크의 남편은 아내가 죽은뒤 리슐리외 추기경의 조카와 재혼했지만 이 결혼도 행복하지는 않았으며 다른 여성과의 관계에 더 열중했다고 합니다.
가브리엘 안젤리크의 두자녀중 딸은 미혼으로 사망한듯하며, 아들인 루이 샤를은 젊어서 결혼해서 딸이 있었던듯합니다만 그 딸은 수녀가 되었다고 합니다.(이게 가브리엘 안젤리크의 딸이 수녀가 됐다는건지 루이 샤를의 딸이 수녀가 됐다는건지 잘 모르겠어요..ㅠ.ㅠ) 루이 샤를은 28살의 나이로 전사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1.http://www.thepeerage.com/p22016.htm#i220159
2.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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