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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35) 가스통-앙리 드 부르봉 : 카트린 앙리에드 드 발자크 당트레그의 아들

엘아라 2015. 2.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사실 글을 쓸수 있을때 미리 쓰는데 필받으면 잘써지는데 오늘 필이 좀 받는군요.-0-;;;


정부들과 그 후손들...(35) 가스통-앙리 드 부르봉 : 카트린 앙리에드 드 발자크 당트레그의 아들



가스통 앙리 드 부르봉

베르누이 공작

한때 메츠의 주교

Gaston Henri de Bourbon, 

Duke of Verneuil 

(3 November 1601 – 28 May 1682) 



가스통 앙리 드 부르봉은 1601년 11월 앙리 4세와 그의 정부였던 마담 드 베르누이(카트린 앙리에트 드 발자크 당트레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전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사산했었고 그 때문에 왕비 자리를 놓치기도 했었죠. 그가 태어나기 두어달쯤전에 그의 이복형이자 왕위계승자인 루이가 태어났기에 그의 탄생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만, 그의 어머니인 마담 드 베르누이가 궁정에서 지위를 굳힐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듯합니다.



가스통 앙리의 어머니

마담 드 베르누이

카트린 앙리에트 드 발자크 당트레그


그는 동생인 가브리엘 안젤리크와 함께 1603년 앙리 4세의 정식 자식으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앙리 4세는 그에게 메츠 주교령의 수익을 보장해주려했을듯하빈다. 그렇기에 아들은 적자로 인정했고 이후에 앙리 4세는 어린 아들을 메츠 주교령의 후계자로 만들려했었습니다. 하지만 1607년 메츠의 주교였던 샤를 드 로렌이 사망하자 교황은 가스통 앙리가 겨우 7살이었기에 그가 메츠의 주교가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사실상 메츠 주교령은 오래도록 로렌 가문에서 주교를 맡는것이 전통이었기에 교황이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좀 애매했었던듯합니다. 결국 가스통 앙리가 성인이 될때까지 임시로 대리 주교가 그곳을 관장하고, 가스통 앙리는 특별한 직책으로 잠시 머무르며 연금은 지급하는것으로 상황이 조율되게 됩니다. 하지만 1612년 대리로 메츠의 주교를 맡던 인물이 사망하자, 루이 13세의 청으로 결국 교황은 11살의 가스통 앙리를 메츠의 주교로 임명하게 됩니다.

재미난것은 가스통 앙리는 평생 사제로 서품받지 않았으며 메츠에 가서 지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주교직은 단순히 정치적 목적때문이었던것으로 추정할수 있습니다.



주교 복장의 가스통 앙리


가스통 앙리는 1652년 마자랭을 위해 메츠의 주교직을 사임합니다만 교황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1659년에서야 메츠의 주교직에서 떠날수 있었습니다. 주교직에서 떠난뒤 그는 다시 궁정 조신이 됩니다. 60살의 나이에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663년에는 베르누이 공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1665년에는 잉글랜드 대사를 역임했으며 1666년에는 라그도크의 주지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스통 앙리는 1668년 수상이었던 피에르 세귀에의 딸이자 2대 쉴리 공작의 과부였던 샤를로트와 결혼했습니다. 이때 둘의 나이는 67살과 46살이었습니다. 둘사이에서는 후손은 없습니다.

가스통 앙리는 1682년 베르누이 성에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