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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2)루이즈 드 라 베로디에르 뒤 루엣 : 앙리 3세의 정부

엘아라 2014. 10.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앙리 3세에 대해서는 뭐랄까 좀 정부 개념이 애매해보이는듯은 합니다.

앙리 3세와 여자들 관계는 다른 국왕들과 달리 대부분 스쳐지나가는 정도밖에 안되어보이거든요.

게다가 영어자료도 없고 말입니다.--;;;게다가 뒤져서 찾은 프랑스어 자료는 너무 경악스러운 내용이 많아서 이것이 진실인지 의문이 들거든요.-0-;;;

어쨌든 적당히 제맘대로 써볼까합니다.-0-;;;;;


사실 이분은 앙리 3세의 정부에 넣기 보다는 다른 왕족들 정부에 넣어야할 분인데 말입니다.-0-;;;;


정부들과 그 후손들...(22)루이즈 드 라 베로디에르 뒤 루엣 : 앙리 3세의 정부




루이즈 드 라 베로디에르 뒤 루엣

Louise de La Béraudière du Rouhet 



일명 "루엣의 미녀"라고 알려졌었던 루이즈 드 라 베로디에트 뒤 루엣은 루엣의 영주였던 르네 드 라 베로디에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별명답게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루이즈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시녀로 궁정으로 불려가게 됩니다. 매우 아름다웠던 루이즈를 보고 궁정의 신하들이 그녀를 숭배했었습니다. 하지만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아름다운 루이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합니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


앙투안 드 부르봉은 부르봉 공작의 아들로 그는 나바르의 여왕 잔 달브레와 결혼했었습니다. 잔 달브레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는 잔 달브레에 대한 애정을 적당히 유지하는 정도였던듯합니다. 그리고 프랑스 궁정에서 루이즈를 만나게되죠. 나바르의 여왕과 결혼하면서 신교로 개종했었던 앙투안은 다시 종교를 바꾸게 되고 신교도인 아내와 점차 멀어졌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놓치지 않았죠. 시녀였던 루이즈와 앙투안 드 부르봉을 엮어줬으며 결국 루이즈는 앙투안 드 부르봉의 자녀들을 낳게 됩니다. 루이즈의 아들이었던 샤를은 후에 루앙의 대주교가 되었는데 그는 평생 이복형이었던 앙리 4세에게 충성을 맹세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루이즈가 아들을 낳을때쯤 앙투안은 루이즈와 사이가 멀어졌으며 다른 여성과 연애질중이었고 루이즈 역시 다른 남자와 연애질을 시작했었다고 합니다.



앙투안 드 부르봉

나바르의 (공동)국왕

앙리 4세의 아버지

....앙리 4세가 아버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앙투안이 사망한뒤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루이즈에게 적당한 남편감을 골라줍니다. 루이즈보다 30살이나 많았으며 이전결혼으로 세명의 딸이 있었던 푸아투의 지사였죠. 루이즈는 결국 모후가 골라준 남편감과 결혼할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루이즈는 이 결혼생활에서 호사스럽고 편안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만, 나이많은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길지 않았었습니다.


이후 루이즈는 다시 궁정으로 돌아오는데 이때 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게 됩니다. 그중에는 철학자이자 "수상록"으로 유명한 미셸 드 몽테뉴도 있었습니다. 몽테뉴가 루이즈와 결혼하기 위해 이혼할것이라는 소문마저 파다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이즈는 국왕의 다른 신하와 결혼했었습니다.


루이즈 드 라 베로디에르는 아마도 앙리 3세가 앙주 공작 시절에 잠시 만났던 여성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그리 깊은것이 아니었던듯합니다.--;;;



앙리 3세

...그 많은 내용을 머리 깨져라 읽었는데 딱 한줄 나와서 좌절중입니다.--;;;


자료출처

1.http://favoritesroyales.canalblog.com/archives/2011/05/20/21183913.html

2.위키 피디어(프랑스어 +구글번역)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