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49) 테크의 메리 : 조지 5세의 왕비 (여덟번째)

엘아라 2014. 7.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영국의 왕비들...(49) 테크의 메리 : 조지 5세의 왕비 (여덟번째)






테크의 메리

영국의 메리 왕비

Mary of Teck

 (Victoria Mary Augusta Louise Olga Pauline Claudine Agnes)

( 26 May 1867 – 24 March 1953) 

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메리 왕비






메리 왕비와 조지 5세는 모두 여섯아이를 낳았고 이중 다섯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메리 왕비의 여섯아이들


장남은 에드워드 8세이자 후에 윈저 공작이 되는 에드워드입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 생존시에 태어났으며 이때문에 4대의 왕위계승자가 찍은 사진이 있었죠.남편이름에 집착했었던 여왕은 손자에게 증손자의 이름을 앨버트로 지으라고 했었지만 조지는 형인 에디의 이름을 넣고 싶어했다고 합니다.(...--;;그런데 에디 이름이 앨버트 빅터였는데...물론 에드워드라는 이름의 애칭으로 에디라고 불렸지만...) 결국 세례명은 에드워드 앨버트(아버지의 할아버지) 크리스찬(아버지의 외할아버지) 조지 앤드류 패트릭 데이빗이 됩니다. 뒤의 네개의 이름은 각각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웨일즈의 성인들의 이름을 딴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애칭으로 데이빗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국왕이 되었지만 심슨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했고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메리 왕비는 평생 아들을 보려하지 않았었죠. 그는 양위후 2차대전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파리에서 살았었습니다.




닉슨과 함께 있는 윈저 공작 부부


차남은 형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된 조지 6세입니다. 조지 6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바램대로 "앨버트"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이때문에 할아버지인 에드워드 7세처럼 버티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그는 보모에게서 학대를 당했는데 보모는 언젠가 국왕이 될 에드워드만 편애했고 버티는 대충 돌봤는데 젖병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젖병을 물린후 울퉁불퉁한 길로 산책을 가서 결국 버티는 평생 위장장애를 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은 그가 예민한 아이로 성장하게 했는데 이때문에 그는 말을 더듬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아들을 조지 5세는 강압적으로 야단쳤으며 결국 말을 더 심하게 더듬었죠. 하지만 그는 형제들중 가장 부모의 말을 잘 들은 아들로 가정을 꾸렸으며 의무에 충실했었죠. 형이 양위한뒤 국왕이 된 조지 6세는 2차대전때 아내와 함께 의무를 수행했는데 이때문에 그는 아버지처럼 건강을 해쳤고 50대의 나이에 사망합니다.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왕비는 남편이 의무를 수행하느라 건강을 해쳤다고 생각해서 시어머니와 함께 윈저 공작부인을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1920년대 요크 공작 부부

후에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비


셋째이자 고명딸은 어머니의 이름을 딴 메리였습니다. 20대 초반에 그녀는 자신보다 열다섯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했는데 정략결혼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었습니다. 둘은 불행했다고 자주 언급되는데 메리의 오빠였던 웨일즈공은 동생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강제로 결혼한다고 불만이 많았었다고 합니다. 물론 메리의 아들은 이에 대해서 부인했지만 아마도 그렇게 크게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던것은 아니었던듯합니다. 단지 의무로 결혼해서 그 의무에 충실했었으리라 추측됩니다. 남편이 헤어우드 백작이 되면서 그녀 역시 헤어우드 백작부인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왕실 의무에 충실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


메리와 그녀의 남편 레슬스(Lascelles)자작

후에 6대 헤어우드 백작 부부


삼남은 글로스터 공작 헨리입니다. 헨리는 형제들중 가장 "하노버 가문 사람을 많이 닮았다"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다른 많은 하노버 가문의 왕자들처럼 주로 군대에만 충실했었으며 다른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버클루 공작의 딸인 앨리스 와 결혼했는데, 매우 다정다감한 성품의 앨리스는 다른이들과 잘 지냈으며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이 제일 좋아한 숙모였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여왕은 글로스터 공작부인인 앨리스에게 "Princess Alice"라는 칭호를 쓰는 것을 허락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글로스터 공작 부부의 얼굴이 새겨진 오스트레일리아 우표

글로스터 공작은  이때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이었다고 합니다.


사남은 켄트 공작인 조지입니다. 그는 헨리와는 정반대의 인물로 어머니를 닮아서 매우 예술적이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잘생긴 외모로 형인 에드워드와 함께 즐거운 나이트라이프를 즐겼으며 바람둥이로 여러명의 사람들과 연애관계였는데 여기는 남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도 다른 바람의 왕자들처럼 결혼후 정착해서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퇴위한 형 에드워드를 여전히 따랐지만 에드워드는 동생을 위해 자신과 거리를 두라고 했다고 합니다. 조지는 친척관계였던 그리스의 마리나 공주와 결혼했습니다.(마리나는 필립공과 사촌관계입니다.) 조지는 1942년 임무 수행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켄트 공작 부부



막내아들은 존으로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소설 the lost prince로 유명합니다. 간질에 지적 장애가 있던 존은 대중에게서 감춰졌으며 특히 전쟁기간동안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직후 13살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했죠



존 왕자

죽기 진전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