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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왕비들...(46) 테크의 메리 : 조지 5세의 왕비 (다섯번째)
테크의 메리
영국의 메리 왕비
Mary of Teck
(Victoria Mary Augusta Louise Olga Pauline Claudine Agnes)
( 26 May 1867 – 24 March 1953)
1910년 에드워드 7세가 사망하고 메리의 남편인 조지가 영국의 조지 5세로 즉위합니다. 메리는 왕비로써 자신의 이름을 이제까지 공식적으로 쓰던 빅토리아 메리가 아닌 그냥 메리라는 이름을 선택합니다. 늘 가족에게서 메리나 애칭인 메이로 불렸기에 아마 이 이름을 택했었던것 같습니다.
20세기초는 세상이 급변하던시기였습니다. 특히 공화주의자들의 발언이 점차 커져갔는데 이때문에 메리와 조지는 모범적 왕실을 보여주므로써 대중에게 호감을 얻으려 노력했습니다. 조지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7세는 스스로 수많은 정부가 있었고 이때문에 그의 시대 궁정 여성들은 빅토리아 시대보다 느슨한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었죠. 이런 상황은 공화주의자들에게 좋은 표적이 될수 있었기에 조지와 메리는 왕실에 이런 스캔들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조지와 메리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부부였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공처럼 서로에게 헌신하는 인물들이었기에 국왕부부가 스캔들에 휘말릴 염려는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스캔들이 존재했습니다.
조지 5세와 메리 왕비
즉위초부터 조지가 메리와 결혼하기전 해군으로 몰타섬에서 복무중일때 어느 장교의 딸과 결혼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조지의 측근들은 너무나도 뻔히 말도 안되는 소리였기에 무시했는데 과격한 공화주의자중 일부는 이 소문을 가만히 두지 않았죠. 파리에서 조지 5세가 몰타에서 어느 장교딸과 정식으로 결혼했기에 메리와의 결혼은 중혼이라서 무효이며 둘의 자녀들에게는 계승권이 없다는 내용의 출판물이 간행됩니다. 이것은 곧 영국에서 소문을 걷잡을수 없게 만들었으며 그제서야 이 사실을 안 조지는 분노했고 출판업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영국의 사법제도하에서 국왕이 명예훼손으로 직접고소하는것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수 있었기에 이 문제는 정부에서 대리로 고소를 진행했으며 압력으로 비춰질수 있었기에 조지가 직접 재판장에 갈수도 증언을 할수도 없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조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이 아닌것이 명확해졌고(...조지가 몰타에서 따라다니던 여자는 사촌인 미시였죠--;;;;) 출판업자는 징역형에 처해졌습니다만 메리와 조지 그리고 나머니 왕실가족들은 이 사건으로 무척 고통받았었습니다. 메리는 이에 대해 한 신하에게 "국왕께서 잘못을 저지르긴하지시만 이런종류의 잘못은 절대 아니다"라고 했었다고 합니다.이런 상황은 조지와 메리가 왕실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게 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듯합니다.
세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영국은 독일과 전쟁을 했었고 영국에서는 반독일감정의 열풍이 일어났죠. 문제는 왕가 자체가 이미 독일가문출신이었다는 것입니다. 독일이라는 말에 경기를 하던 영국인들에게 국왕이 독일가문 출신이라는것 자체가 거부감을 느끼게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국왕이 왕가의 성을 개명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조지는 왕가의 성을 "윈저"로 개명했으며 영국에 사는 그의 독일 친척들에게도 독일식 칭호를 버리라고 하죠. 이때 메리의 집안 역시 테크 공, 테크 공작 지위를 버립니다. 메리의 친정 집안은 성을 "캠브리지"로 선택합니다. 이것은 메리의 외할아버지가 캠브리지 공작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메리의 동생들은 각각 영국 귀족으로써 캠브리지 후작과 애스론 백작 칭호를 쓰게 됩니다.
조지 5세가 독일 왕족 친척들에게 개명을 요구한것에 대한 당시 카툰
하지만 조지와 메리의 이런 왕실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친척들에게 자주 비난을 듣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짜르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였죠. 혁명후 러시아측에서는 짜르가족이 영국으로 망명하는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에 대해서 반대입장이었고 결국 조지는 짜르 가족의 망명을 승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짜르가족들은 살해당하게 되죠. 많은 친척들이 조지의 행동을 비난합니다만 아마도 조지는 영국 왕실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정부가 거부하는 일을 하려하지 않았을듯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조지에게도 뼈아픈 기억이었는지 다른 친척들이 위험에 빠졌을때 여러가지로 영향력을 행사해주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안드레아스 왕자이야기였죠.(하지만 안드레아스 왕자의 딸들은 엉클 조지가 단지 정치적 목적으로 아버지를 구해줬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전선을 방문중인 니콜라이 2세와 그 다섯자녀들
맨 왼쪽이 아나스타샤이고 제일 가운데가 니콜라이 2세 그 옆이 황태자 알렉세이입니다.
딸들은 헷갈리는데--;;아나스타샤 옆이 올가 같고 맨 오른쪽이 마리야 그옆이 타티아나 같습니다.
메리는 전쟁시기 왕비로써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녀는 전시에 힘든 상황에 동참했으며 전선에 가서 병사들을 격려하는 남편과 함께 전선으로 가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줬죠. 그리고 1918년 전쟁이 끝납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메리의 개인적 비극이 막 펼쳐졌습니다. 바로 간질을 앓았던 막내아들 존이 사망한것이었습니다. 존은 간질환자로 지적장애도 있었죠. 이때문에 존은 대중에게서 감춰졌으며 특히 전쟁기간 동안 가족과 멀리떨어진곳에서 생활해야했습니다. 이때문에 때때로 후대에 메리가 냉정한 어머니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만, 메리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양육방법을 따랐으며 이런 방식은 아이들이 부모보다는 보모와 거의 함께 지내는 방식이었죠. 그리고 장애를 가진 왕족들이 대중에 감춰지는 것 역시 당시 유럽 왕실의 관례중 하나이기도 햇었습니다. 메리는 아들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는데 이런 사실은 그녀가 죽은뒤에 발간된 그녀의 개인 서신이나 다이어리에 잘 나타나있다고 합니다.
메리 왕비의 막내 아들 존
애칭 조니
메리는 늘 남편의 충실한 조언자이자 남편의 지지자였습니다. 그녀는 어떤 일에서건 국왕인 남편을 늘 우선순위에 뒀다고 합니다. 메리는 남편보다 훨씬더 여러가지에 대해서 깊은 사고를 했고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남편에게 여러가지 조언을 했기에 조지는 늘 아내가 똑똑하고 판단력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또 메리는 정치문제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인도나 아일랜드 독립문제등에도 늘 신경을 썼었습니다.
이런 메리에게 조지는 늘 고마워했었으며 아내를 매우 우선순위로 뒀다고 합니다. 그가 얼마나 아내를 우선순위에 뒀는가는 커나드사의 배인 "퀸메리호"의 이름이 결정된 전설같은 이야기에 잘 나타납니다. 커나드사는 새호화여객선의 이름을 왕실 여성의 이름을 짓기로 하고 조지의 허가를 받으려합니다. 사장은 조지 5세에게 영국의 가장 위대한 queen의 이름을 따서 짓도록 허락해달라고 했죠. 그러자 조지 5세는 "내아내가 무척 기뻐할것이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당시 커나드사의 여객선들은 전부 "ia"라는 이름의 여성형이 붙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조지아나,에드위나 등등...결국 사장은 조지의 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쓰고 싶어서 국왕에게 청했었는데 조지는 자신의 아내인 메리 왕비의 이름으로 지을것이라 지레 짐작했고 결국 그 배는 RMS Queen Mary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런 이야기가 수긍이 될 정도였다면 조지가 얼마나 아내를 높이 평가했었나를 알수 있을것입니다.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일단 1차대전은 끝났었죠. 하지만 메리는 왕실을 지키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했었습니다.
자신의 시녀들과 함께 있는 메리 왕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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